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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전동

감전동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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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전동의 유래

감전동은 오랜 옛날 낙동강 하류와 하구였던 사상지역 내륙 깊숙히 바닷물이 들어 왔던 지역으로서 토사가 퇴적하여 생긴 모래톱 섬이었는데 강에서 북쪽은 <유도>였고 남쪽으로<자인도>가 있었으며 안쪽으로 <감도>가 위치하였던 곳이다.

섬이었던 감도는 조선시대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하여 여름철이 되면 논밭이 홍수의 피해를 입었던 곳인데 1788년 사상지역에 제방을 쌓아 주었던 이경일 동래부사의 공덕이 새겨진 축제혜민비에는 <감동도일원이 돌을 세워 새로 물길을 내고 좌우로 둑을 쌓았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1740년에 편찬된 동래부지의 사천면 상단에는 감동의 기록이 없다. 이때는 감동은 높은 지대에서 농사를 짓기는 했으나 대부분 저습지와 갈밭지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1904년에 기록된 문서에는 사상면 감동과 서전리가 나와 있는데 근세에와서 호구가 늘면서 독립된 동네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제방을 쌓았던 기록이나 토지문서에 나오는 <감도>, <감동도>라는 지명은 신의 뜻이 담긴 신성한 땅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감전동은 옛날 바닷물이 들어 왔던 곳으로 오랜 세월동안 토사가 퇴적된 비옥한 섬이라 <감도>로 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한다. 그리고, 감전동의 서쪽 낙동강변에는 <서발>이라는 곳이 있었다. 서발은 강물에 의한 유사의 퇴적으로 모래톱의 생성과 변동이 많았기 때문에 새로 생긴 뻘이라는 뜻으로 새뻘이 서발이 되었거나 서쪽 뻘이라서 서발이라 하였을 것이며 그것이 논밭으로 변하여 서전리가 되었을 것이다. 감전동은1914년 감동과 서전을 합쳐서 생긴 지명이다.

감전동의 지명중에 <자인도>가 있는데 이섬은 갈밭지대가 많아 집이 한두채밖에 없었던 섬으로서 강변 모래펄에는 재첩이 많이 잡혔다고 한다. 제방을 쌓았던 기록에 나오는 <강자도>도 학장동의 건너섬인 <대동도>와 함께 감도와 이어진 섬으로 보인다. 감전동의 이색적인 지명중에는 <포푸라마치>가 있다. 원래 이곳에는 수해방지를 위한 토종 포푸라 나무가 많이 서 있었다고 하는데 강수로를 통한 배가 드나들었던 곳이다.

일제시대만 하더라도 서감전 입구에는 신선한 생선회를 파는 술집이 포푸라나무 밑에 몇집 있었는데 이곳을 <포푸라마치>라 불렀고 오늘날에도 이지역은 주점가가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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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 202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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