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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궁동

엄궁동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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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궁동의 유래

엄광산의 서쪽 강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엄궁동의 원 지명은 산 이름따라 엄광리였다. 엄광산은 <엄비치산>으로서 해가 오랫동안 비치는 산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며 그 아래 마을이 엄광리가 된 것이다. 엄광이란 지명에는 옛날 이곳이 신을 섬기고 받들던 성스러운 마을이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1914년 일제시대 산이 활처럼 생겼다고 엄궁리로 개칭하였다는 말이 있다.

옛날 엄광리의 강변이었던 현 농산물 유통단지 앞쪽으로 서감전의 <자인도>와 마주보고 있었는데 이섬을 엄궁사람들은 물 건너 있다고 <건너섬>이라고 했다. 그리고 배가 와서 닿았던 엄궁선창에는 상선들이 들어와 객주마당이 형성되었고 주로 선창가 주변에 사람이 살았는데 이곳에는 연자방아도 있었다고 한다.

강변에는 갈대 밭으로 된 <쇠갈밭섬>이 있었는데 그 섬자리의 일부는 강으로 편입되고 일부는 육지로서 강변도로로 변하였다. 이곳의 산쪽에는 전설의 <장군샘>이 있었는데 이 물을 먹으면서 작은 산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며 하단으로 넘어가는 길은 산을 깎아 지금의 도로가 만들어졌지만 옛날에는 산복으로 난 고갯길로 오르내려야 했다. 그리고 사상쪽으로는 모래둑길로 다녔고 일제때에는 1935년에 생긴 낙동강 제방길로 구포까지 걸어 다녔다. 그만큼 엄궁은 교통이 불편한 마을이었다

엄궁에는 잉어와 민물장어, 그리고 숭어가 많이 잡혔는데 이곳의 최고 명물은 재첩이었다. 강 하구지역인 엄궁강변 모래펄에는 재첩의 수확이 특히 많았는데 농사도 별로 없던 이 마을의 부녀자들은 거의 모두가 재첩국 장사를 하였다. 이들은 밤새 고아서 만든 재첩국을 양철동이에 담아서 머리에 이고 걸어서 새벽 어두운 밤길에 마을을 떠나 구덕령을 넘어 대신동으로 가거나 하단을 돌아 괴정을 거쳐 대티고개를 넘어 부민동, 아미동등 시내까지 거리를 누비면서 큰소리로 <째찌꾹(재첩국) 사이소>라고 외치며 다녔다. 이처럼 재첩국은 과거 부산사람들이 매일 같이 듣던 잠결의 첫소리였고 동시에 기상을 알리는 신호처럼 된 것이다. 그리고 부산을 찾는 외지인들에게는 재첩국아줌마의 소리가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되어주었다.

엄궁동에는 일제시대부터 8·15 해방 이후까지 양어장이 있어 붕어낚시의 명소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6·25 피난 시절 이곳에 와서 낚시질을 한적이 있었는데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라 하여 뒤에 이 마을을 <평화촌>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낙동 강변은 철새도래지로서 갈대가 우거진 평화롭고 낭만적인 마을이었는데 현재는 일부 중소 공장들이 들어섰고 산쪽에는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 담당부서 : 문화체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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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 202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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