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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법동

괘법동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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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법동의 유래

괘법동은 북쪽으로 덕포동, 삼락동, 남쪽으로 감전동, 동쪽으로 주례동에 둘러 쌓여 있는 사상지역의 중심 마을이다. 괘법동이라는 지명은 1914년 일제시대 이곳의 <괘내리>와 <창법리>를 합쳐서 생긴 이름이다. 감현천은 덕포동과 삼락동과 경계를 하고 동남쪽은 주례동과 감전동을 경계하여 괘내, 동괘, 서괘마을이 합쳐 괘법동이 되었다.

괘내천 물은 동네 배산인 삼각산 아래 현재 신라대학교가 들어서 있는 <가내골(개내골)> 골짜기에 물방앗간이 있었던 <물방산 (물뱅이산)> <수용골(물방앗골)>에서 흘러 내려 현재의 사상역 앞을 지나 옛날 사상 명진학교 앞의 목을 거쳐 감전동 쪽으로 흘러 낙동대교의 북쪽장인도 배수문을 거쳐 현재의 낙동대교가 있는 곳으로 흘러 내렸다. 괘내라는 지명은 옛날 마을 앞 나루터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던 갯가의 동네요, 냇물이 괴어 있는 동네라서 <괸내>였는데 <괘내>가 되었다는 풀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창법리는 1872년(고종8년) 제작된 경상도 지도에 나오는 사상면 사창이 있었던 <창나루>를 말한다.

사창이란, 조선시대 민가가 여럿이 모여 한 마을을 이룬 공동체로 하여금 창을 설치하여 곡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흉년이나 춘궁기에 대여해주고 다음 수확때 환곡하게 하는 제도로서 이 창고가 있었던 곳이 바로 창법리, 창나루터였던 것이다.

괘내리와 창법리는 예로부터 사상지역의 중심지로서 면모를 과시해 왔다. 괘내라는 지명에서 <괘>는 <걸다, 달다, 게시하다>는 뜻이 있으며 <내>는 <냇가 동네>라는 뜻이 담겨 있어 이곳이 행정의 중심지로서 게시하는 곳이므로 괘내라고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곳은 사상의 본거리로서 사상지역 8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회산팔경대>가 있었고 임진왜란때 전사한 분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연구제단>이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사상면사무소와 사상면 사창이 있었으며, 구한말 민족 교육기관인 <사립명진학교>도 여기에서 설립 되었고, 경부선 <사상역>이 있고, 부산 신발의 원조인 신라고무공업사가 설립되었으며, 뒤에 국제상사가 들어서 세계적인 신발산업의 원산지가 된 곳이다. 또한 현재 이곳에는 서부시외버스 터미널이 있으며 괘내천의 발원지인 수용골에는 신라대학교가 들어서 있어 옛날부터 중심부로서 깃발을 걸고 있는 냇가 마을임이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 담당부서 : 문화체육과 
  • 전화번호 : 051-310-4067
  • 최종수정일 : 2018-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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