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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동

모라동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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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동의 유래

모라동에는 <운수사>라는 고찰이 있어 그 뒷산을 <운수산>이라고 하며 여기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을 <운수천>이라고 부른다. 모라는 삼한시대부터 마을이 있었던 오랜 동네라는 것을 이곳에서 발견된 조개 무지 유적인 모라 패총이 증명해 주고 있다. 모라의 지명은 조선시대 동래부지에 사천면 상단 모라리와 뒤에 사상면 모라촌으로 나와 있다. 모라 지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마을>이라는 우리말의 고래어인 <모라>에서 연유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병도 박사의 논고에 의하면 고대 사회 집회소의 명칭이 <마을>이며 이것이 촌락의 명칭과 함께 사용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양서제이전 신라전에는 성을 일러 <건모라>로 했다는 기록이 적혀 있는데 이는 <큰마을>이라는 뜻이므로 <모라>는 <마을>로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모라의 지형을 살펴보면 산을 배경으로 저지대는 낙동강의 토사가 퇴적하여 쌓인 땅이므로 <모라>는 <몰개> <모래개>에서 유래하며 넓은 땅의 지명에 붙는 <라>와 함께 모래로 된 땅으로 <모라>가 되었다는 풀이도 있다.

조선시대, 사천면 상단이었던 사상의 지명도 <모래내>와 <모래땅(모라)>에 그 어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라동의 저지대는 모리펄로서 물이 고인 웅덩이와 미나리깡, 갈밭으로 형성되어 1935년 낙동강 제방을 쌓기 전에는 인가가 없던 곳이었다.조선시대 사상지역에 제방을 쌓은 기록을 보면 <모라촌 뒤에 키 모양으로 석축을 하고, 같은동네 위의 주을산 일원과 산밑에 둑을 쌓았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모라에 사람이 살았던 지역은 패총이 발견된 근처와 현재의 철도 동쪽 윗각당과 철도 서쪽 아랫각당이었다. 모라동이 역사적인 내력이 있는 고장이란 것은 운수사 사찰이 증명해 주고 있는데, 이곳에 남아 있는 2기의 부도탑은 조선시대의 귀중한 유물이다.

운수사를 따라 오르는 절곡 계곡은 물이 맑고 경관이 아름다워 <청류동천>이라 불렀는데 <큰골>과 <작은골>이 있고 서당너머 <서당골>, 못이 있는 <못골>, 고동바위의 전설이 있는 <고동바위골>, <문리골>에다 계곡 좌편은 <잿골>, 안쪽 골짜기는 <안골>등 많은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운수천은 옛날 양산 구포와 동래 사상의 경계지점이었는데 구포의 사랑골로넘어가는 고개가 <어부랑고개>이며 수리가 살았던 <수리재고개>가 있다

  • 담당부서 : 문화체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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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 2018-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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