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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사상 예술문화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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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9
시가 있는 창(50) 민들레처럼
시가 있는 창(50) 민들레처럼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때가 되면 햇살 가득 넘치고 빗물 넉넉해 꽃 피고 열매 맺는 일 순탄하기만 한 삶도 많지만 사는 일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아 어느 해엔 늦도록 추위가 물러가지 않거나 가뭄이 깊어 튼실한 꽃은커녕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다 눈치 빠른 이들은 들판을 떠나고 남아 있는 것들도 삶의 반경 절반으로 줄이며 떨어져나가는 제 살과 이파리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다 겉보기엔 많이 빈약해지고 초췌하여 지쳐 있는 듯하지만 그럴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때 곁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를 곧게 곧게 아래로 내린다 꽃 피기 어려운 때일수록 두 배 세 배 깊어져간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서 ― 도종환 시 「민들레 뿌리」 전문 입에 쓴 음식이 몸에 좋다고 한다. 무릇 땅에서 자라는 어느 풀인들 데치거나 삶지 않고 날것으로 먹으면 사람 입에 쓰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몸에는 좋은 줄 아는데 우선 입에 쓰니, 봄날, 아직 쓴 맛이 채 배기도 전의 어린 쑥이며 씀바귀며 독이 있어 소도 못 먹는다는 고사리며, 뿐이랴, 온갖 새순과 산나물을 사람들은 미리 마구 훌쳐먹는다. 어떤 것은 수족을 뜯어내고 어떤 것은 뿌리를 뽑아내고 어떤 것은 허리를 동강낸다. 한편 ‘잔인하다’ 불러도 될까. 보신을 위함이면 무슨 짓이라도 정당한가. 민들레의 잎과 뿌리가 몸에 좋다고 봄부터 여름까지 반찬으로 즐긴다. 흰 꽃보다 노란 꽃이 많아서 흰 꽃 민들레가 더 좋다고들 하는데, 아마 토종이라느니 효능이 뛰어나다느니 하여 흰 꽃 민들레가 수난을 더욱 받아 희귀해진 것이겠지만, 두 종류 모두 어릴 적 잎 모양이나 뿌리 속살 색깔은 같아서 이른 봄에는 구분하기 어렵다. 한방에서는 아직 꽃피기 전의 민들레를 약재로 쓴다. 열로 인한 종창이나 인후염, 간염, 황달 등을 치유하고, 오줌을 잘 누게 하며 젖을 빨리 분비하게 하는 효험이 있다. 봄을 겪으면서 허술한 꽃대 끝에 꽃이 드러나면, 우리는 흰 민들레와 노란 민들레를 차별하기 시작한다. 햇빛이 주는 모든 빛에서 노란 빛만을 거부하여 노란 꽃이 된 것이라면, 흰 꽃은 아직 햇빛이 닿아 물들기 전의 순한 꽃잎일까, 아니면 모든 빛을 이미 잃고 마침내 탈색한 꽃잎일까. 희든 노랗든 입에 쓰다는 것은, 흙이 주는 모든 맛에서 오직 쓴 맛만 우리가 거부하기 때문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에 좋다는 것은, 흙의 맛이 원래 쓴 맛이라, 흙과 어울려 살아야하는 우리의 몸도 원래 쓴 맛이라는 건가. 진나라의 폭정을 몰아낸다는 명분으로 한나라를 이끌었던 유방이, 부패했던 과거의 황실 관행을 다시 답습하려 했을 때, 충신 번쾌는 주저 없이 직언했다. 그의 말을 ‘양약고구충언역이’(良藥苦口忠言逆耳: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신의 말은 귀에 거슬린다)라고 상소한 장양의 설득에 결국 유방은 크게 뉘우쳤는데, 오늘 우리가 입에 쓴 풀들을 받아먹으며 무엇을 뉘우치는가. 4.3, 5.18, 세월호… 그 쓴 맛을 직언한 말에 우리는 얼마나 반성하는가. 아직도 꽃잎 색깔로 뿌리의 맛이 다르다 서로 우길 것인가. 텃밭에 작물을 기르는 사람이나 마당에 잔디를 가꾸는 사람에게 민들레의 로제트 방패와 원뿌리 창은 막강한 그들의 적병이다. 쉽게 근절되지 않는다. 어설픈 호미질로는 어림없다. 지독한 제초제도 이파리만 잠시 마를 뿐, 뿌리 아래까지 물리칠 수 없다. 북을 울리거나 군가를 부르지는 않지만, 흙이 주는 쓴 맛을 말뚝처럼 박고 버틴다. 노아의 홍수로 온 천지에 물이 차고 지상의 생물들이 모두 도망쳐도, 제 사는 땅에 뿌리 깊이 내린 민들레는 한 발자국도 도망하지 않았다. 대신에, 신(神)은 그의 씨앗을 바람처럼 자유롭게 해주었다. 아무 뜻 없이 피었다 지는 민들레를 세상의 형편에 빗대보는 것이 어쩌면 부질없는 짓이리라. 그러나 나는 이 땅의 날씨와 습도에 익숙하고, 기역니은아야어여를 부리며 숨 쉬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라는 구원의 말을 믿을 수밖에. 발길에 차이고 짓밟혀도 서로 팔 겯고 흙 부여잡고, 꽃 피고 바람 부는 날, 머리 위에 수천수만의 홀씨 걸러내어, 햇볕 잘 드는 온 세상으로 번져나갈 민들레처럼, 그 끈질긴 쓴 맛을 가득 느낄 때, 내 입맛은 살아나고 내 몸도 건강해지리라 믿는다. 권용욱 (시인)
2018-04-29
2018 책 읽는 마을 사업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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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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