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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가 있는 窓 115 - 아버지의 시간
- 박 윤 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 속을 비워 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 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공광규, 「소주병」 전문 그리운 아버지―.오늘 글 쓴답시고 모인 사람들 틈에서 소주 한잔 마셨습니다. 밤 되니 날씨가 제법 싸늘해집니다. 가을밤입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여 잡초 수북한 속에 동그마니 누워계신 아버지. 지난 성묘 때 술 한잔 부어 드리고 향불대신 생시 그리 즐기시던 담배 한 개비 불 붙여 드릴 때 마음은 왜 그리 아리던지요. 고향 마을 뒷산, 멀리 남해바다가 넘실거리는 아득한 풍경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던지요. 발 아래 굽어보면 젊은 시절 일구시던 논밭이며 돌담을 넘겨다보던 호박덩굴, 고샅길의 그 어둠 한 자락조차 당신 눈에 즐겁게 차오를 테니까요.하루를 뜀박질하다시피 바쁘게 살아도 늘 눈앞의 일은 그대로이고, 삶의 영역은 조금도 넓혀지지가 않습니다. 살아간다는 건 비워가는 것이라지만, 아무리 마음을 추슬러도 제 안에 가득한 이 안개같은 욕심은 한 자락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더하셨겠지요. 그저 막막함의 저울 위에 식구食口의 삶을 온전히 떠메고 겨운 길을 걸으셨던 아버지. 가족들에게는 그 슬픔 결코 보이지 않으려고 혼자 얼마나 입술 깨무셨는지요. 생전에 지으신 많은 집들. 아버지께서 지으신 그 하얀 집들은 지금도 튼튼하게 버티며 사람들의 행복한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있는데, 정작 한번도 그 집에 들어보지 못하신 아버지. 지금 당신은 동그마니, 창이 없어 별자리 한번 내다보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집 한 채 거두어 누우셨습니다.소주 한잔에, 늦게서야 쌀쌀함을 싣고 울컥 마음 안으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오늘은 여러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아파트 베란다의 창을 덜컹거리며 바람이 또 지나갑니다. 술을 드시고는 한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던 당신. 그때 아버지의 가슴을 무겁게 눌렀던 삶의 무게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번도 비굴함을 보이지 않으셨던 당신. 살아 보니, 산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시간이야 왜 없겠습니까마는, 제 자신에게 비굴하지 않게 산다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세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번이고, 어떤 날은 하루에 몇 번이고 세상을 부숴버리고 싶은 때도 있습니다. 이러면서 살아있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구요.사랑합니다.한번도 드리지 못했던 말씀……, 잠시 누워 계시느라 듣지 못하셨단들 무슨 일이겠습니까? 아버지, 사랑합니다. ■시인■
- 2010-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