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마당
열린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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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갈대 이야기
- 1740년 발행된 『동래부지』 고적조에 의하면 중국에서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소상팔경’에 비유할 만큼 사상지역은 예로부터 낙동강 하류지역의 경승지였다. 이른바 사상지역의 아름다운 풍경 8가지를 표현한 ‘사상팔경’ 속에는 ‘칠월해화’(七月蟹火ㆍ7월 갈대밭에서 게를 잡기 위해 밝힌 횃불)와 ‘팔월노화’(八月蘆花ㆍ8월 강변에 피는 갈대꽃)가 들어있을 만큼 갈대는 우리 고장의 명물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를 지나면서 개발에 밀려 갈대밭이 대부분 사라지고 만다. 그렇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곳이 있다. 낙동대교 남단의 장인도선착장에서 엄궁선착장 사이의 낙동강둔치 일대가 바로 이 구간이다. 이 곳의 둔치에는 중간에 수로가 있고 그 주변에는 갈대가 옛 모습과 가깝게 간직하고 있다. 이곳으로 진입하는 길이 제대로 없었던 덕택이다. 지금도 이곳을 찾으면 갈대가 무성한 군락을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예부터 우리 고장 사람들은 9월초에는 갈꽃을 뽑아 갈대빗자루를 만들어 집집마다 청소도구로 사용했으며, 솜씨 좋은 사람들은 색실을 넣어 만든 빗자루를 구포장에 가서 팔기도 했다. 특히 엄궁 사람들은 베어낸 갈대로 초가지붕보다 수명이 10배나 길었던 갈대지붕 재료로 사용했다. 얼마 전 구청에서 전시한 ‘그때 그 시절을 아시나요’라는 사상 옛사진 전시회에서 엄궁동 사진 속에 갈대지붕이 남아 있었던 것을 발견하고서 무척 기뻤다. 과연 갈대 지붕이었음을 알았던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 고장의 명물이 아직도 우리 곁에 있다니 반갑지 아니한가. 봄에는 연둣빛으로 솟아나는 새로움이 이미 져버려 서걱대는 갈색 사이로 보여서 좋다. 갈대의 키가 허리춤 이상으로 자라난 뒤에는 바람이 일 때면 갈대밭이 물결처럼 파도치는 모습이 마치 녹색 카펫처럼 보인다. 또한 갈댓잎으로 바람개비도 만들어보고, 갈대밭 속에서 개개비의 소프라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낭만이라고 할 수 있다. 가을에는 다시 조금씩 푸른빛을 벗어가는 한편으로 꽃을 날리는 품이 그럴 듯하고, 겨울에는 차가운 날씨 가운데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을 정도로 벗어버린 갈대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는 풍경이 좋다. 휠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갈대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사상구의 자랑인 엄궁선착장~장인도선착장 사이의 넓은 갈대밭으로 나들이할 것을 추천해 본다. 강 은 수 (명예기자)
- 2013-05-30
- 느림과 마음의 여유
- 앗, 책상 귀퉁이에 놔둔 휴대폰이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깨져버렸다. 깜짝 놀라 휴대폰을 얼른 집어 들어 작동시켜 봤으나 결국 먹통이 됐다. 그동안에도 통화 때 상대방에게 내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일이 흔했고, 때로는 멋대로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던 휴대폰이었지만 완전히 망가진 게 아닌데 무작정 버리기에는 아직 아깝다는 이유로 미적거리던 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미룰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그날 저녁 퇴근 후. 결국 하나 저지르기 위해 가까운 휴대폰 매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쇼윈도우 앞에서 어느 모델을 택할까 이리저리 골라 보다가 마음에 드는 게 있어서 ‘그래, 저거다’하며 매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마음 한구석에서 은근한 목소리가 내 발길을 붙잡았다. “휴대전화 없이 서너 달 살아보면 어때? 그동안 문명의 이기를 벗어난 건 어떤 맛일까 궁금했는데… 이럴 때 한번 좀 더 느긋한 삶을 살아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 한번 해봐”라는 내 마음속의 유혹이 들렸다. 다시 깊은 숨을 들이 쉬며 언젠가 TV 토크쇼에 나온 한 연예인의 말을 떠올려 봤다. 약간 우스갯소리로 한 말인데 공감 가는 부분이 있어서 잊지 않고 있던 말이다. 그는 일부러 사람 사는 냄새를 맡기 위해 지하철이나 버스를 자주 탄다는 중견 연예인이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다른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 그쪽에서 아는 체를 하거나 시선을 주면 일일이 인사하기 바빴는데, 요즘은 그런 걱정이 사라졌다고 했다. 왜일까? 이유는 버스든 지하철이든 인도에서 보행중이든 간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부다 휴대폰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에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며 웃었다. 이제는 휴대전화가 곧 생활의 모든 것을 가두고 지배하는 세상, 이럴 때 그것 없이 서너 달만 한번 살아본다면 어떨까? 그러나 결국 나는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당장 발생할 수많은 불편, 회사 업무, 가족간의 긴급연락 불가 등등….‘정말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 보는 건 언제쯤에나 가능할까?’ 신 재 민 (덕포동)
- 2013-05-30
- 작은 배려
- “끼~~이~~익” “헉! 엄마. 저 사람 너무한 거 아냐? 우리가 저 차 박을 뻔했잖아.” “그러니?” 얼마 전에 남편과 아이들을 태우고 친지 칠순연에 갔다 오던 길에 있었던 에피소드다. 다른 차량의 마구잡이식 끼어들기 때문에 내가 급정거 하면서 사고가 날 뻔했는데 그저 느긋하게 운전을 하자, 그렇게 지나치게 관대한 나를 보고는 옆에 있던 아이들이 더 이해를 못하며 방방 뜬다. 우리 부부가 다른 차량의 끼어들기에 상당히 관대한 마음이 들게 한 그런 사건(?)이 하나 있었다. 내가 둘째 아이를 낳던 때 남편 회사 일로 함께 제주도에 갔었다. 그런데 제주를 떠나 김포로 돌아오던 우리가 탑승한 항공기는 폭우와 번개로 인해 착륙을 못한 채 공항을 수십 회 선회하며 가솔린을 쏟아 버리고 있었다. 그저 천지신명께 비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하늘의 도우심이 있었는지 비행기가 한 시간 반 만에 김포공항에 착륙을 시도했다. 끼이이잉…… 비행기가 내리는 동안에도 산통은 계속됐고 이미 그 전에 상황을 파악한 승무원들이 우리 부부를 맨 먼저 내릴 수 있도록 조치해 줬고, 공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잡아 탄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산부인과에 가자고 했다. 그때부터였다. 머리에 털 나고 혼잡한 시내에서 그렇게 빨리 달리는 택시는 처음 봤다. 그야말로 총알처럼 질주를 하기 시작한 건데 총알도 그렇게 빠를 수는 없었다. 전광석화 같은 끼어들기와 고속 주행으로 우리는 서둘러 산부인과에 도착할 수 있었고 거기서 무사히 둘째를 낳았다. 조산이었지만 처음에 인큐베이터에 약간 있었던 거 말고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 그동안 그토록 미워했던 난폭 운전(광폭한 끼어들기 등)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아기를 낳은 것이다. 그날 이후 우리 부부는 운전을 하면서 타인의 끼어들기에 완벽하게 관대해졌다. 뒷좌석의 아이들이 놀리든, 직장 동료가 ‘양로원 운전’이라고 비난하든, 누구든 끼어들라치면 나는 곧바로 브레이크를 밟아 공간을 준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왜 그렇게 ‘양로원 운전’을 하냐고 따지는(?) 아이들이나 직장 동료들에게는 무게를 잡고 한마디 한다. “저 자동차에는 어린 아기가 몹시 아파 병원으로 향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저 손님은 첫아이를 낳는다는 아내의 전화에 달려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또는 그동안 너무 바빠서 참석 못했던 아버지의 제사를 3년 만에 찾아 가는 아들일 수도 있고, 미국 가는 마지막 비행기를 놓칠지 모르는 사람이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자그마한 배려, 그저 한두 번쯤 져 주는 여유, 이런 게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서로 양보함은 물론 서로 더 조심하는 문화가 싹트지 않을까. 유 일 숙 (모라동)
- 2013-05-30
- 독자 퀴즈 마당(5월호)
- 2013-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