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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설·선구·설비장비의 ‘선두주자’
조선·건설·선구·설비장비의 ‘선두주자’
아이볼트 등 1,000종 넘는 제품 생산, 자체 브랜드 ‘DCH’로 수출·판매CE 인증마크 획득에다 태풍 매미에도 끄떡없는 ‘제품의 우수성’ 입증 “세계 최고의 품질을 목표로 CE마크를 취득했으며, 앞으로도 더욱 더 진보되고 안전한 제품으로 고객 여러분께 봉사하겠습니다.”조선·건설·선구·설비장비의 선두주자인 대창마린테크(주) 김효성 대표는 앞으로의 계획을 이렇게 밝혔다.대창마린테크(주)가 지난 2003년 6월 획득한  CE마크는 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ies : EC)의 불어표기인 ‘conformite europeenne’의 머리글자를 딴 마크로 EU시장 내 안전에 관련된 통합 인증마크다. 소비자의 건강, 안전, 환경보호 차원에서 CE 인증마크를 의무적으로 부착해야 한다. 유럽시장에 진출하려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수출상품의 비자(VISA)로 비유된다.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0년 10월 모라동에 설립한 대창기업사를 모태로 하는 대창마린테크(주)는 1993년 삼락동으로 이전한 뒤 사업을 계속 확장해왔다고 한다. 현재 삼락동 119-1 번지에 본사를 두고, 도로 건너편에 생산공장과 물류창고 등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경남 진주에 있는 단조공장을 인수해 가동 중이며, 강서 화전산업단지에도 부지를 확보, 물류창고를 설치할 계획이다.김효성 대표는 “1,000가지가 넘는 제품을 생산해 국내 조선3사 등에 자체 브랜드인 ‘DCH’로 판매하고, 해외에 수출도 하고 있다”며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제품보관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력 제품은 소켓, 와이어로프 클립, 샤클, 턴버클, 아이볼트·너트, 체인과 부속품, 레일 부속품 등이다. 지난해 120억원의 매출(수출 20억원)을 올렸으며, 올해는 150억원 이상을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창업 때부터 근무해온 20년 장기 근속자들이 근로자(38명)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김효성 대표는 “애사심이 뛰어난 직원들과 노사협의회를 통해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구내식당 등 사원복지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협력업체들과도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정신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지난 2003년 9월 태풍 ‘매미’가 불어와 부산항에 설치된 갠트리 크레인 여러 대가 무너졌지만, 이 회사가 납품한 제품 ‘타이다운 어레인지먼트’(태풍 등 강풍으로부터 대상물을 안전하게 지탱하기 위한 지지대)와 크레인은 끄떡없이 그 위용을 자랑해 제품의 우수성이 입증됐다고 한다. 최근 서해에서 침몰된 천안함을 인양하는데도 이 회사 제품이 사용됐다고 한다. 아이볼트·너트(기계설비 등을 들어올리거나 이동하는데 사용하며 머리부분에 둥근 고리가 달린 볼트·너트)의 경우 한 개의 무게가 최고 100㎏까지 나가며, 300톤 이상의 물체를 들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최근 물밀듯이 밀려오는 저가의 중국제품에 대해서는 고품질로 정면승부하고 있다”는 김 대표는 “기술개발에 보다 많은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문의 : 대창마린테크(주)(☎301-6078) 구청 지역경제과(☎310-3022)   사진 설명 - 대창마린테크(주) 본사 전경. 부산 신항만에 설치된 갠트리 크레인 지지대(타이 다운 어레인지먼트)
2010-07-31
포토 앨범
포토 앨범
    어린이 자전거 안전운전 면허시험 첫 실시 구청과 (사)세이프키즈코리아는 7월 7일 괘법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처음으로 ‘찾아가는 어린이 자전거 안전운전 면허시험’을 실시했다.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한 이 학교 어린이 60명이 2차 실기시험을 치렀다.       “하늘 높이 날아라”  사상구생활체육회는 7월 3일과 4일 삼락강변공원에서 ‘1박 2일 가족캠프’를 열었다. 이 캠프에 참여한 20가족 80명은 가족대항 체육대회, 레크리에이션 등을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재활용품 수집 경진대회 새마을운동사상구지회는 지난 6월 28일 태능자원, 모란환경자원 등 3곳에서 ‘숨은자원 모으기 2010 재활용품 수집 경진대회’를 열었다. 100명이 참여해 30톤을 수집했으며, 매각 대금 870만원은 어려운 이웃돕기 등에 사용하기로 했다.         작은 자원봉사센터 ‘터존’ 협약식·간담회 사상구자원봉사센터는 지난 6월 29일 신라대 이노 카페에서 정향효마을, 정향행복한마을, (사)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사상지회와 우리동네 작은 자원봉사센터 ‘터존’ 협약식을 갖고 간담회를 개최했다.
2010-07-31
독자 퀴즈 마당
  [문제] 어둡고 낙후된 이미지가 떠오르는 사상공업지역을 밝고 활기가 넘치는 첨단산업도시로 확 바꾸어 나가는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사업시행자인 부산벤처산업단지개발(주)는 22일 구청에서 사업추진설명회를 가졌습니다. 이 사업은 무엇입니까? <1면 기사 참조>    가족과 함께 풀어 보신 후 정답을 우편엽서(8월 20일 도착분까지 유효, 연락처 반드시 기재)에 적어 보내 주십시오. 정답을 맞추신 분 가운데 10분을 추첨, 문화상품권 2매를 보내드립니다. 당첨자는 사상신문 제174호(8월 25일 발간 예정)에 발표합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보내실 곳 : 617-702 부산 사상구 구청로 34 (감전동 138-8)               사상구청 문화공보과 사상신문 편집실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제172호(7월 1일 발간) 퀴즈 정답 : ‘봄봄’ 당첨자 :  곽정희(모라3동)   김재영(괘법동)          김화영(주례1동)   문문순(모라1동)          박찬문(모라3동)   장수임(주례3동)          정순심(덕포2동)   최은숙(엄궁동)          최남이(괘법동)    현소은(엄궁동)
2010-07-31
행복했던 어린 시절 시골생활
  우 정 렬(감전동)     내가 마음속의 고향으로 그리워하고 있는 곳은 1960년대 중반의 시골고향이다.나는 그 곳에서 너무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이 생각나곤 한다. 울주군 방면인데 온갖 전설도 있고, 백년도 넘은 플라타너스 나무도 있으며, 고목 아래서 노인들께서 휴식을 하기도 했다.당시는 보릿고개 시절이라 밥 먹고 살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었다.설사 돈이 좀 있었다 해도 요즘처럼 물질적으로 넉넉하고 풍요로운 것이 아니어서 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살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일이 많았다.비록 내 집이 없어 주인집에 세 들어 살았었지만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추억거리가 많이 남아있기에 아직도 가끔씩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그립고 아쉽기만 하다. 당시 제법 멀리 떨어진 절 근방에 도시락을 싸서 소풍가서 각종 나무들이 내 팔로 몇 뼘이나 되는지 재보기도 하고, 멱도 감고 물고기도 잡아 병속에 가득 넣기도 하고, 씨름과 땅따먹기 놀이도 했었다.또한 여름이면 밤에 원두막 주인의 눈을 피해 친구들과 수박과 참외를 서리하여 깨어먹었던 일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수통을 들고 논을 다니면서 메뚜기를 잡아 병속에 가득 넣어서 메뚜기를 볶아 먹거나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기도 했는데 그 고소한 맛은 지금도 잊어버릴 수가 없다.여름방학이 되면 땡볕더위 속에 온종일 냇가에 멱 감고 송사리나 물고기를 잡으며 수영을 했는데, 요즘 학생들은 방학이 되어도 학원이나 오가며 온통 공부에만 찌든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다.이런저런 갖은 체험을 하며 자란 나는 아이들은 가능한 한 행복감을 느끼며 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나중에 자라서 힘든 일을 겪을 때 버팀목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어린 시절만이라도 전원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며 산다는 것은 그리 까다롭지는 않으면서 아무나 맛볼 수 없는 행복한 유년기의 조건인 것 같다. 아파트에서 태어난 요즘 아이들은 문명의 혜택은 많이 받고 자라고 있지만 나처럼 아름다운 전원 속의 추억, 순박한 사람들과의 추억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 그래서 내 어린시절을 아이들에게 자주 이야기해 주기는 하는데 유년기에 직접 목가적인 전원생활을 하는 것 하고야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자녀들뿐만 아니라 다른 어린이들도 소풍 야외체험 등을 통해서 전원생활을 자주 맛보고 행복감에 젖을 수 있는 순간이 많아져야 좋지 않나 싶다. 유년기는 평생 성격과 습성이 형성이 되는 중요한 시기니까 말이다.
2010-07-31
호칭
  박 태 남(덕포동)     아직도 동네에 나가면 나를 ‘통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사정이 있어 통장직을 그만둔 지 1년이 넘었지만 그들은 금방 나를 알아보고 덥석 손까지 잡기도 한다. 세상사는 일이 거기서 거기지만 나는 통장직을 맡으면서 또 다른 세상의 일면을 보게 되었다. 어떤 이는 집안 속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서러운 눈물까지 내비치기도 했다. 그만큼 나를 믿고 편한 상대로 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그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한 두 번의 방문으로 그들이 마음을 여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고령의 기초생활 수급자 한 분은 담당 복지사의 전화방문 조차도 거절했었는데 통장인 나의 도움으로 이제는 그 분과 잘 지낸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 댁을 방문해서 너무 초라한 살림살이에 놀랐다. 혼자 사시는 그 할아버지는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집에 살고 계셨는데 방안 가득 일회용 가스가 나뒹굴었고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이런 곳에서 식사는 제대로 하시는지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때가 한여름이었는데 난 당장 시장에 가서 수박 한 통과 시원한 콩국을 사 왔다. 받기가 내심 미안했던지 “통장님요, 와이캄니꺼 미안쿠로…” 하며 손사래를 치시던 그 분의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부르는 호칭에 따라 참 편한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한 여성이 있다. 우리는 만난 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지만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사이다. 처음에는 예의상 ‘○○씨’라고 했고 그러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의 내면을 읽을 줄 아는 사람과는 쉽게 마음을 열게 돼 있다. 연장자인 나에게 그녀는 자연스럽게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 했고 나 역시 동생 부르듯 그녀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는 순식간에 친분이 두터워졌다.호칭은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상대를 존경하는 데는 ‘선생님’만한 호칭도 없을 것이다. 선생님이란 호칭이 꼭 교사에게만 지칭되는 것은 아니다. 시답잖은 글을 쓴답시고 긁적거리고는 있지만 그래도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아무 것 아닌 것 같아도 내게는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서 좋고 상대에 대한 존경심마저 든다.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호칭이 분명 있다. 사람도 격이 있듯이 호칭에도 레벨이 있는 듯하다. 식당에 들어가 아줌마라는 호칭보다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대접이 달라지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이치가 아닐까?   결혼 후 20년을 살아오면서 내게도 참 많은 호칭의 변화가 있었다. 시집와서 처음 시어머니가 집에서 내게 부른 호칭은 ‘새아가’였고 밖에 나가면 남들에게는 ‘새댁’으로 불려졌다. 애들이 학교를 가게 되면서 ‘누구 엄마’가 되었고, 한 때는 잘나가는 ‘사모님’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이제 50을 바라보는 내게 ‘아줌마’라는 호칭은 누구 집 강아지 이름처럼 쉽게 불려진다. 그만큼의 많은 세월을 껴안고 산 흔적의 산물이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떤 호칭보다도 내가 즐겨 듣고 싶은 것이 ‘내 이름’ 석 자다. 나이가 들수록 이름을 불러주면 잊고 지낸 시간들이 되살아오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내 20대를 추억하고 싶은 심리가 깔려 있는 건 아닐까? 그것은 어쩜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하듯 닫혔던 마음 빗장을 열 수 있는 호칭이기도 하다. 호칭은 인간관계의 전략이다. 한 개인의 호칭은 기업으로 말하면 ‘브랜드’이기도 하다. 이렇듯 호칭이라는 것이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불리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쌓기도 허물게도 한다. 한 번 맺은 인연처럼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잊혀져가는 내 이름 석 자에도 영혼이 실리기를 바란다. 내 이름에 꽃이 피는 그 날이 오기를….
201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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