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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소식지 : 181 호

시가 있는 창 120 - 시인으로 산다는 일

 

 

박윤규 시인

 

나 수중手中에 지닌 것 없는데
사람들이 나를 시인이라 하네
아득한 말의 껍질을 깨지 못해
종일토록 바둥거리며 가랑잎같이 흔들리다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데
좁은 골목길에서 개가 컹컹 짖네
나보고 시인이라 하네
무서워라 은행나무 뒤에 어둠처럼
아무도 모르라고 붙어서는데
바람이 나를 잡아끄네
달이 청명하게 나를 비추네
나 정말 수중에 지닌 것 없는데
    ――――  졸시, <서시序詩> 전문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까맣게 잊고 살았던, 잊고 싶어 하며 살았던 그 재앙이 드러난 거지요. 자연 앞에 우리는 얼마나 작은 존재이던가요. 하늘에는 지구상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별들. 빛의 속도로 수만의 날들을 건너야 닿을 수 있는 그곳. 그러니 내가 반백을 살면서 쌓아올린 것, 건져올린 것은 다 무엇이던가요.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절체절명의 벼랑 끝에서라도 우리는 희망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게 뭐, 우리에게 문득 날개가 돋았다든지 벼랑 끝에 핀 조그만 꽃향기에 취해서였던지. 하여간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너무나 작은’ 모습에 절망하여 주저앉아 있지는 않았습니다. 서로 일으켜주고 다정한 눈빛을 건네며, “얘야, 네 안에도 우주가 있단다.” 그렇게 일러 주었겠죠. 참 대견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자연이 무너지는 때, 모든 미래가 불투명하고 허망에 드는 때, 시인은 어떤 존재입니까? 시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요? 굴착기 기사는 그 돌무덤에서 귀하디귀한 생명을 구하고, 소방관은 불을 끄고 또 어떤 이는 물을 나르고 무너진 것들을 일으키는데……. 하다 못해 이 법석 중에 돈이라도 벌자는 사람도 있는데……. 시인은 이도저도 못하고 앉아 있습니다.
그렇다고 평소에, 평화로운 때에라도 세상에 인생의 기쁨을 전해나 주었는지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밥 한 술 뜰 때마다, 변기에 가 쪼그리고 앉았는 때마다 늘 죄송합니다. 길을 걷다가 길가에 핀 봄꽃을 만나면, 훈훈한 바람이라도 몸에 스쳐오면,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렇지요. 시인을 옹호해 주는 당신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사람 사는 세상에는 정치가도 상인도, 철학자도 사기꾼도, 게으른 자도 싸움 잘하는 자도 희망도 절망도 섞여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요.
작은 배낭 하나 메고 ‘어머니의 강’이라 부르는 강가강을 걷던 때나, 세상의 탐욕을 끌어모아 사랑을 노래했던 타지마할 앞에 섰던 때, 낙타와 함께 터벅터벅 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타르 사막을 걷고 있던 때, 또는 ‘풍요의 신’ 안나푸르나의 발치를 밟으면서 하염없이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나는 시인은 아니었습니다. 내딛는 발걸음은 그만큼 가볍고 경쾌했을 것입니다.
열심히 살아야지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일지 몰라도, 길면 얼마나 길고 짧으면 얼마나 짧겠습니까? 그동안 못난 글을 읽어 주시느라 힘드셨을 당신께 안부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박윤규 시인의 ‘시가 있는 창’ 연재는 120회로 마칩니다. 10년 동안 거르지 않고 좋은 원고를 주신 필자와 ‘시가 있는 창’을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호부터는 진명주 시인의 ‘詩의 풍경’으로 새롭게 여러분을 만나뵙겠습니다. 더 많이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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