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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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문예 작품 공모
- 2018-09-29
- 봄이 오는 소리
- 2018-09-29
- 빨간 우체통의 외로움을 달래다
- 시가 있는 창 <55> 빨간 우체통은 외롭다. 외롭다 못해 서럽게 서 있다. 사무실 건너편에 내려다보이는 빨간 우체통이 우편이라는 하얀 이름표를 달고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 과거와 달리 편지나 엽서를 보내려고 빨간 우체통에 다가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래전 즐겁게 편지를 쓰던 나의 모습도 아련한 기억 속에서 자취를 감춰 버렸다. 즐거운 편지! 요즘은 편지나 엽서로 소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SNS로 신속하게 소통하는 시대다. 그런 까닭에 길거리 곳곳에 흔하게 자리하던 빨간 우체통이 소임을 다하고 용광로 속으로 들어갔다. 관공서 앞이나 사람이 북적대는 주요 목에 드문드문 외로이 서 있긴 하지만, 거들떠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드물게 빨간 우체통과 마주할 때면, 처량한 몰골로 변화한 모습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때로는 애처롭다는 느낌마저 들곤 한다. 지금의 시각에서 빨간 우체통은 소식의 표상이 아니라 기다림과 느림의 표상이다. 느림의 미학을 간직한 채 추억의 뒤안길에서나 떠올릴 수 있는 퇴물로 전락했다. 멀지 않아 서서히 기억에서마저 사라져 갈 골동품이 될 것 같아 더욱 아쉽다. 수줍은 듯 단풍잎이 붉게 물드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가을이 깊어 가면 빨간 단풍잎이 땅바닥을 뒹굴며 쓸쓸함을 발산한다. 빨간 단풍잎도 외로운 까닭에 뒹구는 걸까? 빨간 단풍잎을 한 잎 주어다 고운 글씨로 사랑의 소식을 담아 볼까? 그 빨간 단풍잎을 엽서인 양 빨간 우체통에 넣어 볼까? 우표 한 장 붙일 때 이는 설렘도 함께 느끼고 싶다. 무덥던 여름날에 밤하늘 은하수를 세며 새하얀 밤을 지새운 이야기도 써 볼까? 내일엔 무덥던 여름 이야기를 담은 단풍잎 엽서 한 장을 빨간 우체통에 넣고 싶다. 가슴 깊숙이 숨겨 놓은 해맑은 추억과 동심 하나를 끄집어내어 빨간 단풍잎에 옮겨 적고 싶다. 빨간 단풍잎 엽서를 빨간 우체통에 넣고 답장을 기다려 볼까? 그 단풍잎 엽서는 배달이 불가할 거야. 가을의 쓸쓸함을 떨치며 그냥 그렇게 여름의 초록과 싱그러움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족한 일이야. 빨간 우체통의 외로움을 달래 주고 싶어. 신기용 (문학평론가)
- 2018-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