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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소식지 : 197 호

詩의 풍경 <16> 마음의 둠벙

 

 

 

 

진명주(시인)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 뜨는 건
 믿을 수 없을만치의
 축원

 ....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김남조, 〈너를 위하여〉 부분

 


옆 자리 커플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했다. 주고받는 대화 속 여물지 않은 문답법이, 숨긴다고 숨겨도 피식피식 쉴 새 없이 새어나오는 웃음이 이제 막 시작한 그들의 사랑을 일러주고 있다. 웃음소리는 대기실 안을 이리저리 떠돌며 틈새를 비집고 내려앉는다. 의자 손잡이에 내린 웃음 하나가 설레임에 겨워 부르르 몸을 떤다.


그래 누군들 그런 시절이 없었으랴. 막 사랑을 시작한 저 커플처럼 세상 모든 것이 하나하나 다 의미가 있던 시간. 손가락 하나 움직임에도 미묘한 반응이 살아 숨 쉬던 시간들.


한낮의 소음, 한낮의 더위, 불안과 근심걱정으로 가득한 병원 대기실 안의 후텁지근한 공기를 그들의 환한 표정이 환기 시켜준다.


한 고비를 넘긴 사람들은 움직임이 적다. 오랜 시간 기쁨이든 슬픔이든 한 곳을 향해 견뎌온 이들은 적은 움직임으로 수천 수만 마디의 말을 대신한다. 다시 저 신발을 신고 걸을 수 있을까. 남의 이야기가 바로 자신의 일이 되었을 때의 절망과 공포. 수술대를 벗어나 다시 신발을 내려다볼 때의 생의 벅찬 환희와 감동을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남편 옆에는 긴 시간을 인내와 사랑으로 지켜온 아내가 있다.


애무보다 깊은 신뢰의 시선이 오고간다. 남편의 흘러내린 머릿결을 매만지는 아내. 머릿결을 끌어 올리는 아내의 손을 잡는 남편. 막 사랑을 시작한 커플이 한 고비를 넘긴 커플을 바라본다. 한 고비를 넘긴 커플이 막 사랑을 시작한 커플을 바라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언제나 같은 선상에 있다.


한동안 가뭄이 윗동네 사람들 애를 끓게 만들더니 이제는 장마가 시작되었다. 밤새도록 비가 내리고 새벽녘에는 천둥번개까지 한 몫 거들었다. 거짓말처럼 말개진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뭄이나 장마처럼 수없이 반복되던 마음의 추위와 더위. 하늘이 맑게 개이듯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는 벌떡 일어설 것이다. 이마에 손 짚어주는 늙은 아내, 처음 사랑할 때 그 떨림을 기억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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