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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더위를 이고 조금은 미덥지 않은 생각으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안동행 버스를 탔다. 사상구 생활문화운동 연중 캠페인 ‘한 가정 한 가훈 갖기’ 에 다음 행사로 예정된 가훈박람회에 모셔올 서예가 ‘청남 권영한’ 선생님을 뵙기 위해서였다.
저술가에 서예가라는 이야기만 듣고 한 길만 걷는 고집 센 분일 것이라는 혼자만의 상상과 편견으로 안동민속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 방문객에게 가훈을 써 주고 계시는 선생님은 “성씨가 어떻게 되는지? 조상의 시조는 알고 있는지? 조상님들 가운데 어떤 뛰어나신 분이 계시는지?” 한참을 묻고 설명하신 뒤에야 답하는 이에게 필요한 글귀를 조상님들의 어록 가운데 하나를 뽑아 적어주시는 모습을 보며 ‘팔순의 뜨거운 피를 가진 선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령의 나이에도 붓을 든 모습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고 글을 써 내려가는 필력에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힘이 느껴졌다.
가훈이 왜? 필요한지 당돌한 질문에 선생님은 “수평시대에 옆으로 뻗어나가는 질서는 잘 지키는 사회지만 수직관계를 모르는 사회에서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가풍이나 전통의 맥이 모두가 바쁜 핵가족으로 끊어져, 한 이념으로 뭉치는 ‘가훈’이 필요한 것인데 그것이 ‘소통’이며,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조상의 이야기가 끊어진 요즘 세대의 우리들 가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에서 가족이 함께 할 이야기를 찾고 그것이 가족의 공통되는 인생목표가 되는 것이다.
먼 길을 마다않고 선생님을 초빙하려는 자치행정과 문영빈 씨의 속내가 조금이나마 헤아려져 버스를 오를 때 가진 편견에 부끄럽기까지 했다. 어쩌면 내 안에 갇혀 생각의 소통조차 하지 못하는 못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선생님은 가훈을 써 달라는 방문객에게 묻는다. 무슨 글귀를 원하는가? 가 아닌 성씨가 어떻게 되는지? 조상들 중에 어떤 훌륭하신 분이 계셨는지? 그 속에서 찾아낸 조상의 어록 중에 한 구절을 받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족의 소통과 인생목표가 되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가훈이 될 것 같다.
어쩌면 청남 선생님은 가훈을 써주는 산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황 은 영 명예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