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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사상소식지 : 214 호

산을 닮다

“누가 산에 불 질렀지? 방화범 신고해야 될 텐데…….”


동료가 직접 스마트폰에 담아 온, 내장산 단풍의 절정에 탄성하며 내가 건넨 우스갯소리였다. 자연의 섭리와 신비로움이 깃든 장면이 하나씩 눈앞에 펼쳐졌다.


그녀는 유독 산을 좋아했다. 처녀시절부터 좋아했지만, 아이 셋 낳고 바삐 살며 한동안 품지 못한 산을 이제야 다시 찾았노라 했다. 지난달부터 주왕산과 내장산을 차례로 다녀오더니, 또 다음 산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산이 너무 좋아. 미치도록 좋아!”


그녀의 표현은 한마디로 이랬다. 산의 정기를 듬뿍 안아서인지, 산 이야기를 할 때의 표정은 예사롭지 않다.


산에 오르기까지 숨이 턱에 차고 힘들지만, 막상 정상에 서서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을 때의 그 쾌감이란, 탁 트인 푸른 시야를 즐기며 심호흡할 때의 희열이란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모르노라 했다.


일터에서 꼬박 12시간 일하랴, 집안 살림하랴, 바쁜 와중에 주 1회 휴무 때 산을 찾는 그녀의 부지런함이 사뭇 놀랍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어느 광고 멘트처럼 그렇게 훌쩍 떠날 수 있는 여유가 부럽기도 하다.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그녀와의 대화 중에 ‘그러려니’란 말이 문득 가슴에 와 닿았다. 산행 후 그녀의 변화일까. 저 너그러움과 여유는 어디서 온 걸까. 마치 꼭 산을 닮은 듯한 드넓은 품이 느껴졌다.


‘그러려니’, 새기면 새길수록 참 욕심 없고 편안한 말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 이해, 용서, 포용도 내포된 말이다. 마치 무거운 짐이나 두터운 옷을 훌훌 벗은 듯한 가벼움 같다. 어쩌면 졸졸졸 물소리, 후르륵 바람소리처럼 자연인 것 같기도 하다.


주변 모든 일에 ‘그러려니’하고 내 마음을 비운다면, 현실에 처한 불만도 눈앞의 미움도 없으리라. 내 맘 속의 꽈배기를 풀고 옹졸함도 던지면 마침내 산과 같은 너그러움과 여유를 찾을 수 있으리라.


산, 나도 산을 닮고 싶다. 그녀가 점점 닮아가고 있는 산을 내 안에 끌어다 품고 싶다. 눈만 감아도 보이는 산, 저 창문 너머 가까이 있는 산, 늘 바쁜 일상에 쫓기는 나를 언제라도 보듬어 줄 나만의 산을 짓고 싶다.


언제든 날 오라하고 지친 나를 편히 쉬게 하는 산, 나의 욕심을 구름처럼 걷어가고, 나의 미움도 성냄도 바람처럼 잠재워줄 산, 나도 거기 미치고 싶다.

          
주 성 미 (괘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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