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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따라 낭만의 색소폰 선율이 흐르고…
기찻길 따라 낭만의 색소폰 선율이 흐르고…
    사상은 교통의 요충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서부산의 대중교통이 한 곳에 모이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시민의 발’이라고 일컬어지는 도시철도(지하철)를 비롯해 시내버스, 김해를 이어주는 경전철역이 있습니다. 또한 예전에 비해 지금은 인기와 관심이 떨어진 곳이지만,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사상 기차역도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상의 활기찬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곳에 자리한 사상 기차역에는 오늘(5월 30일) 조금은 색다른 소리가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기차의 기적 소리와 철길을 달리는 레일 위의 기차 소리만 들릴 것 같은 간이역 광장에 울려 퍼지는 ‘포도원 색소폰 앙상블’의 색소폰 소리는 때 이른 한낮의 무더위를 식혀주기에 그저 그만인데 싱그러운 나무 그늘에서 맛보는 감미로운 색소폰 소리가 달콤한 휴식처럼 느껴집니다. 가늘고 깊게 울려 퍼지는 색소폰 소리는 영화의 OST에서부터 클래식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로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우리가 자주 듣던 대중가요가 흘러나올 때면 그 음악에 따라 박수와 함께 노래도 절로 흥얼거리게 합니다. 지친 하루에 휴식 같은 음악은 사상역 광장에서 간이역이 주는 추억과 편안함이 더해 또 다른 무대를 만들어냅니다. 이 연주회를 기획한 코레일 사상역의 정선기 역장은 “교통의 중심인 사상에서 철도 문화를 활성화 시키고, 철도 사상역을 이용하는 고객과 지역주민들을 위해서 작은 음악회를 마련했다”고 말합니다. 올 가을에는 사상역 숲속광장에서 다시 음악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도심 한가운데서 기차역의 낭만에 색소폰의 선율이 자아내는 멋진 분위기는 그래서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초록의 푸른 그늘이 있는 기차역 광장에서는 물론, 사상 곳곳에서 멋들어진 ‘낭만의 음악회’가 이어졌으면 하고 기대해봅니다. 황 은 영 (명예기자)
2014-06-27
제자의 가장 값진 선물, 전화 한 통화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하루 전날 밤에 28년 전에 졸업한 제자로부터 반가운 전화가 와서 흐뭇해진다. 올해도 5월 14일 밤에 “선생님, 저 흥복입니다. 그간 건강하시며 별고 없으신지요? ……다음에 부산에 내려가면 꼭 선생님 댁에 들르겠습니다. 계속해서 전인교육, 인간교육, 인성교육에 힘써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길러 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흥복아, 정말 고맙구나. 직장생활에 피곤하고 바쁠 텐데 졸업 후 한 번도 잊지 않고 기억해 주니…. 그리고 결혼할 시기도 훨씬 지났는데 서둘러 결혼하렴. 그때는 내가 꼭 참석하마”하고 대답했다. 돌이켜보면 1983년 고교 1학년 때 흥복 군의 담임을 맡았었는데 별로 잘해 준 것도 없고 유난히 관심을 가졌던 제자도 아니다. 또한 남들이 다 가는 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직업전선에 일찍 뛰어든 제자다. 흥복 군은 엄청난 붕괴사고를 당했던 삼풍백화점에 서 일했던 적도 있다. 당시 그의 생사를 알아보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연락했으나 제대로 되지 않아 안절부절못한 적도 있었다. 할 수 없이 부산의 본가에 전화해 무사함을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사고가 수습이 된 뒤에 전화가 왔다. “선생님, 무척 염려하셨죠. 저도 연락드리고 싶었지만 사고 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도저히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제 늦게나마 제 목소리를 들었으니 안심하십시오”라고 했다. 보통 스승의 날이면 가끔씩 선물을 사 들고 오는 제자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1~2년 뿐 결코 오래 가지 않는다. 또한 재학생들도 카네이션을 준비하고 선물꾸러미도 가져오지만 별로 달갑지가 않다. 마음과 마음이 통해야 하는데 물질로 서로 통하려는 의도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마다 스승의 날 전날에 걸려오는 흥복 군의 전화 한 통화는 나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반가운 소중한 선물이 되어 버렸다. 오늘도 그가 훌륭한 사회의 역군이 되고 하루빨리 결혼해 가정을 꾸려 나가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우 정 렬 (감전동)
2014-06-27
야외수업과 천막교실을 아시나요
야외수업과 천막교실을 아시나요
      6.25가 일어난 지 벌써 64주년이 됐다. 사상지역의 최초 교육기관인 사상초등학교는 6.25와 관련된 특별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민족상잔의 전쟁 와중에 겪어야만 했던 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다. 사상초등학교는 6.25가 일어난 지 3개월 뒤 1950년 9월 미국의 육군통신부대가 학교에 진주하게 된다. 당시는 전쟁통이라 학교를 무조건 군인들에게 비워주고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지금의 사상교회 뒷산(당시는 면사무소 뒷산)에 텐트를 치고 천막교실에서 수업을 했다. 능인사 건너편 지금의 한빛아파트 자리는 야외수업 장소로 이용됐다. 그리고 괘법동 우리병원 뒤편 텃밭에 천막을 치고 수업을 했다. 동사무소의 빈칸도 곧잘 교실로 이용됐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1950년~1953년 사이에 사상초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로 당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겪었다. 그러던 1951년 1월 26일 사상초등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들의 실화로 학교 건물이 불탔으며, 이로 인해 학교의 온갖 서류도 함께 사라지는 비운을 겪었다. 학교를 미국 육군에게 비워준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학교가 불탄 것을 본 당시의 학생들은 물론 졸업생들도 발을 동동 구르며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세월이 6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모습은 잊을 수 없었다고 권세용(76)씨 등 당시에 학교를 다녔던 70대 어르신들은 생생히 기억한다. 사상초등학교 건물은 1953년 9월 벽돌로 지은 2층 양옥으로 복구돼 선생님과 학생들은 한 많은 야외교실과 천막교실 생활을 마치게 됐다. 이에 따라 실로 37개월 만에 학교로 돌아와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나이 어린 초등학생들로선 너무나 가슴 아픈 일들을 6.25로 인해 겪어야만 했다. 6.25 때 미군들의 진주로 학교에서 쫓겨나 받아야 했던 야외수업과 천막교실 수업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역사가 됐다.               강 은 수 (명예기자)
2014-06-27
독자 퀴즈 마당 (6월호)
독자 퀴즈 마당 (6월호)
 
201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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