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319 호

“동산 김형기 선생 생애, 역사적으로 재평가 받길 기대”



인터뷰 / 동산김형기선생기념사업회 고문 김덕규 어르신
 

“3·1 운동을 이끈 백부에 대해 늦었지만 정부 차원에서 진실 규명 작업이 이뤄지고 있어 만감이 교차할 뿐입니다.”

사상구 출신 독립운동가 동산 김형기 선생의 친조카 김덕규(86) 동산김형기선생기념사업회 고문〈사진〉은 "그동안 묻혀있던 백부의 독립운동에 대한 활동이 이제야 제대로된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라며 벅찬 심경을 전했다.

삼락동 출신 독립운동가 김형기 선생을 재조명하기 위한 사업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사상구는 지난 8월 9일 ‘동산 김형기 선생의 삶과 정신’이라는 주제로 학술 세미나를 개최해 학생 대표로서 독립운동에 앞장선 김 선생에 관한 역사적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어 김 선생의 가문인 김녕 김씨 유두 문중이 소유한 모라동 유헌재(재실)에 있는 기념비와 전시관을 확대해 기념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문중과 협의 중이다.

김 고문은 백부의 업적이 묻히지 않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녔다. 사상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으로서 30년 넘게 백부의 생애를 추적했다. 그 결과 3·1운동 당시 독립운동을 펼쳤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학생 210명 중 최고형인 1년 형을 선고받고 1년 6개월 옥살이를 하게 된 김 선생에 대한 일제시대 판결문을 확보했다. 판결문에는 김 선생에 대해 “정치 변혁의 목적을 수행하고자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수천 인의 군중이 열광적으로 조선 독립 만세를 고창하게 했다”라고 기재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의학대학) 학생이었던 김 선생은 출소 이후에도 부산으로 와 ‘동산의원’을 설립하고 의열단에 독립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6·25 전쟁 직후 이념 갈등이 심하던 시기 남한의 정보기관으로 끌려간 후 행방불명됐다.

김 고문은 “사상 출신인 백부의 독립운동은 우리 지역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라며 “앞으로 업적이 제대로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백부의 생애에 대해 계속 연구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상구 관계자는 “김형기 선생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잊혀져 버렸다”며 “이제라도 김 선생을 알리게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앞으로도 숨겨진 애국지사 발굴과 지원을 적극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1990년 김 선생에 대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월 김 선생의 사망과 관련해 진실 규명 개시 결정을 내리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상문화원(☎316-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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