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82 호
시가 있는 창 (66) 참 지우기 힘든 관념

기러기는 울지 마,
기러기는 날면서 끼루룩 울지 마,
바람은 죽어서 마을을 하나 넘고 둘 넘어
가지 마, 멀리 멀리 가지 마,
왜 이미 옛날에 그런 말을 했을까.
도요새는 울지 마,
달맞이꽃은 여름 밤에만 피지 마,
언뜻언뜻 살아나는 풀무의 불꽃,
풀무의 파란 불꽃
――― 김춘수 시 「노새를 타고」 전문
잊혀진다, 사라진다, 우리가 말하는 ‘아쉬움’이라는 서정의 틀 속에 관념은 늘 자리잡고 있다. 그것을 살피는 일은 참 유쾌한 서글픔이다. 마치 아이가 먹고 있는 차갑고 단단한 얼음과자가 여리고 천진한 순수 앞에 빠르게 녹아내리는 것처럼.
근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지나가는 것과 가볍게 스쳐가는 것이라도 머릿속을 한번쯤 비워내고 투명하게 떠올려볼 일이다. 우리 삶을 지탱하던 가치들이 요즘 새로운 의미로 다가선다. 아무리 내 생각이 옳더라도, 나와 척을 진 여러 사람의 무리가 있다면 조금 비켜서서 그쪽 말도 들어보아야 한다. 나는 완벽한가? 그대는 완벽한가?
고양이는 야옹 하고 울지 마. 바람개비는 오른쪽으로만 돌지 마. 코스모스는 가을을 기다리지 마.
우리가 이미 사람에 대해, 존재에 대해 어떤 규정을 가진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오늘의 정의가 내일은 배반으로 자리할 수 있다. 이 관념은 자유로워야 한다. 이쪽과 저쪽을 넘나드는 관념이 아니라, 다른 관념도 그럴 수 있겠구나 허용하는 그런 자유 말이다.
중요한 것은 무언가? 우리가 같은 땅을 밟고 서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 누구를 짓밟고 넘어가는 행복이 아니라, 우리 속의 존재 모두 삶의 축복을 누려야 한다는 진리. ‘역사’라는 것에 우리 미래가 발목 잡혀서는 안 되겠으나, 그것을 쉽게 잊고 지우려 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모든 가치는 그 ‘역사’로부터 비롯되었으므로.
얼마 전 종영된 어느 TV 드라마가 생각난다. 정해진 결과 앞에서 죽창을 들고 적진을 향해 언덕을 기어오르던. 이 뜨거운 여름날, 우리는 ‘우리’이기 때문에, 저마다의 가슴 안에 ‘풀무의 파란 불꽃’을 피워 갖고 있을 것이리라.
말복이 되기 전에 입추가 먼저 왔다. 드는 파도와 나는 파도가 그렇듯, 우리 삶에 이 검은 절망이 사라져야 희망이 오는 것이 아니다. 여름이 가기 전에 가을이 오듯, 절망 속에 먼저 희망은 출렁이고 있는 것을.
여름 밤, 달맞이꽃 색이 유난하다. 오늘 밤은 만월이다.

박윤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