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82 호
독자투고 - 수박의 세 가지 맛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던 지난 주말. 시골에 홀로 계시는 시어머니께서 우리 집을 정말 오랜만에 방문하셨다. 구십이 넘은 연세에도 늘 시골에서 홀로 사시는 터라 더욱 주름살이 패이고 흰 머리카락이 많으며 검게 탄 모습이셨다.
도시에 나와 사는 자식들이 아무리 도시로 오시라고 해도 “공기 좋고 말벗이 많은 시골이 좋다”며 한사코 홀로 살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계신다. 오실 때마다 그냥 오시지 않고 꼭 양파, 감자, 마늘, 고추, 오이 등 농작물을 잔뜩 들고 땀을 흘리면서 오신다. 도시에서 사 먹어도 되는데 직접 지은 농작물이라며 보따리에 가득 가지고 오시니 정말 자식 생각하시는 어른들께 미안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나저나 갑자기 먹을 것이 마땅찮아 주스를 한 잔 따라 드리고 근처 마트에서 수박 한 덩이를 사 왔다. 행여나 익지 않았으면 낭패일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넓고 납작한 쟁반에 담아 갖다 드렸더니 시어머니는 대뜸 “따 보지 않아도 잘 익은 것을 알 수 있겠구나” 하시니 일단 안도가 되었다. 쪼개보니 과연 빨갛고 당도도 높으며 탐스럽게 잘 익어 있었다. 시어머니께서는 꼭지둘레가 조금 꺼져 있는 수박이 잘 익은 것이라고 일러 주셨다. 이제 수박 고르는 비결을 알았으니 살 때마다 칼로 삼각형으로 도려내는 번거로움은 면할 것 같다.
다 먹은 뒤 껍질과 씨를 버리려 했더니 “얘야, 그건 버리지 말고 반찬으로 먹어 보렴” 하시며 요리하는 법을 설명해 주셨다. 먹고 난 수박껍질에서 겉껍질은 벗겨 내고 채를 썰어 소금과 기름을 넣어 볶으면 초가지붕 위의 박나물 맛이 나고, 된장찌개에 넣으면 싱싱한 수박냄새가 살짝 코끝에 배어 여간 맛있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시어머니 말씀대로 일부는 볶아 나물로 먹고, 일부는 된장에 넣어 끓였더니 과연 별미였다. 한마디로 ‘일거삼득’인 셈이었다.
옛말에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하지 않았던가. 수박 감별 요령과 수박껍질 활용에 대한 시어머니의 지혜는 순전히 생활 속에서 우러나온 산지식이요, 산체험 그대로였다. 훗날 내 자식에게도 꼭 이런 이야기를 전해 주리라 마음먹었다.
저녁에는 날씨도 덥고 추어탕을 먹으러 나가자고 했더니, 그러잖아도 추어탕 끓일 재료를 가져 왔다며 한사코 반대하시기에 집에서 큰솥에 국거리를 넣고 어머님이 시킨 대로 재료를 차례차례로 넣었더니 정말 명절이나 여름휴가 때마다 끓여 주시던 바로 그 맛이었다.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도 생활의 보탬이 되는 산지식을 배웠으니 마음만이라도 시원하고 흐뭇한 하루였다.
우윤숙(대동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