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81 호

시가 있는 창 (65) 늦게나마…

담배꽃

마흔이 가까워서야 담배꽃을 보았다
분홍 화관처럼 핀 그 꽃을

잎을 위해서
꽃 피우기도 전에 잘려진 꽃대들,
잎 그늘 아래 시들어가던
비명소리 이제껏 듣지 못하고 살았다

툭, 툭, 목을 칠 때마다 흰 피가 흘러
담뱃잎은 그리도 쓰고 매운가
담배꽃 한줌 비벼서 말아 피우면
눈물이 날 것 같아
족두리도 풀지 않은 꽃을 바라만 보았다

주인이 버리고 간 어느 밭고랑에서
마흔이 가까워서야 담배꽃의 아름다움을 알았다
하지(夏至)도 지난 여름날
뙤약볕 아래 드문드문 피어 있는,
버려지지 않고는 피어날 수 없는 꽃을

 ------  나희덕 시 「담배꽃을 본 것은」 전문



어느 생명체나 꽃을 가진다. 한 생애의 절정을 드러내어 자기 복제를 퍼뜨리는 욕망은 섭리다. 존재의 가장 치열하고 아름다운 열정이며 고비다. 다만 만사가 자연스러울 때 모든 꽃들은 제 몫을 이룬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가! 꽃 피는데 바람 부는 날이 허다하다. 꽃인 줄 모르고 밟아 으깨는 포식자들. 하물며 꽃대 오르기도 전에 잘리는 꽃도 있다. 오히려 이게 자연스러운가?

잎 때문에 피어나지도 못한 담배꽃 비명은 익숙하지 않지만, 산촌 출신이라 나는 감자꽃 사연을 좀 안다. 사람이 필요한 지하 감자의 투실함을 위하여, 감자꽃대가 오르면 낫으로 툭, 툭, 잘라버린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감자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우긴 적도 있었다. 요즘은 나도 일부러 감자꽃을 즐긴다. 아니, 감자꽃이 자신의 몫을 즐기는 것이리라. 하얗게 밭을 밝히는 감자꽃의 과거사를 두고 사람들은 참회해야 할까?

생산의 잉여에도 불구하고 경제이윤과 약육강식의 구실로, 혹은 무지함으로, 이 세상의 꽃들을 함부로 훼손하는 우리 사람들이 과연 이 땅의 주인인가? 주인이라 우기고 군림해도 좋은가? 더군다나 사람이 사람의 꽃대를 잘라 그늘에 내다버린다는데, 그럼 사람 중에도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인가? ‘세상이 원래 그렇지 뭐’라고 무심히도 살지만, 밭고랑에 내친 담배꽃을 보고 어느 시인은 늦게나마 쓰고 매운 눈물을 흘리는데….

권용욱 시인


권용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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