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65 호

시가 있는 창(49) 알콩달콩 가려운 삶

가끔 가슴 깊은 곳에 떠도는
구름의 무게는 풍선일 수 없다.

시퍼런 멍의 질량을 재는 
눈금 없는 저울만이
주름진 삶의 골짜기를 알 뿐이다.
 
묵직한 틀에 깊이 갇힌 중년의 무게 
구두 뒤꿈치 닿는 소리마저
무게의 붉은 숫자들을
울림으로 뼛속 깊이 새겨 넣는다.

퇴근길 달빛이 고요를 살포시 얹어도
휘청휘청 등골이 휘어 주저앉고 만다.

등 굽은 주름의 깊이만큼
낡은 가방에 기대어 미소를 잇댄다.
 
멀리 아이들 웃음소리 달려올 쯤
어깨 펴고 미소의 탈을 쓴다.

헛기침 한 번에
아내는 웃음 더불어
활짝 대문을 열어젖힌다.

― 자작시 「중년의 무게」 전문


나는 늘 웃음 더불어 가렵다. 삶이란 알콩달콩 가려운 것!

내 얼굴도 몸도 웃음꽃 피듯 가렵다. 봄이 올 때면 노루귀가 쫑긋쫑긋 조그마한 꽃으로 세상을 엿보고 엿듣듯 내 귀도 쫑긋댄다.

출근길은 걸어서 오십 분 거리다. 자주 걷는다. 걸음걸이가 솜털처럼 가볍다. 솜털이 얼굴에서 웃음 함께 흩날린다. 불그레한 볼에서 행복의 열기가 넘실댄다.

내 기분은 새털구름이다. 산뜻하다. 그 모든 것을 발걸음에 얹고, 횡단보도를 당당히 건너기도 하고, 골목길을 사뿐히 빠져나가기도 한다.

사무실 문을 열 때 생긋 미소도 지어 본다. 책상 위에 비춰 드는 햇살이 출근을 축하라도 하듯 포근한 미소를 짓는 것처럼 눈에 밟혀 온다. 그 한줄기의 햇살이 장미꽃보다 더 향긋한 자연의 향기를 풍기기도 한다. 햇살과 마음의 손짓을 하며 교감도 한다. 그 순간 생기가 더 돋는다. 이런 느낌은 백수를 경험한 사람의 특권이기도 하다.

가끔 지금의 일을 때려치울까 하는 먹구름이 마음속 깊이 파고든다. 이런 마음을 억누를 때마다 행복감을 만끽한다.

오래전 잠시 경험한 백수 생활이 인생의 진정한 맛이었을까? 그 맛은 텁텁했다. 지금의 자리라도 붙어 있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자주 걸어서 퇴근길에 오른다. 운동 삼아 땀을 뽑아낸다. 도시 생활이 녹록치 않아 걷기 운동이라도 해야만 한다.

집으로 걸어갈 때면, 고요에 젖어들곤 한다. 아니 늘 고요에 젖은 중년 남자다. 지나는 동네마다 골목길이 고요하다. 고요가 어깨를 스치며 은하처럼 잔잔히 흐른다. 고요를 즐기며 걷는다. 때로는 중년의 무거운 어깨로 쓸쓸히 걷는다. 고요를 느낀다. 알록달록 얼룩진 일상을 되밟으며 삶의 미소를 느낀다. 행복이 깃든 고요에 젖은 중년의 남자. 

집에 다가올 때면 이따금 옛 기억이 귓전에 맴돈다. 이미 내 품에서 떠나버린 아이 둘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보금자리에서 들려오는 토끼 같은 아이들 웃음소리! 환청과도 같은 그 소리와 함께 어깨를 활짝 펴고 옷을 가다듬는다. 웃음 머금고 문을 연다.

아내가 냇내를 풍기며 웃음 더불어 맞이한다.

신기용



신기용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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