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63 호

시가 있는 창 (47) 고향에 남은 사랑

가로등
때로는 지켜보는 사랑도 가슴 저밀 때가 있다. 마주 향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안타까움이 내 것이 될 때가 있다. 겨울 밤 맨발로 서서 남의 발등을 비추는 가로등. 밤안개에 번지는 그 불빛이 더욱 슬퍼질 때가 있다. 영원히 시들지 않은 종이꽃처럼, 시들지 않았어도 품을 수 없는 그 사랑의 향기. 그 질긴 목숨만큼 길게 아파서 지켜보는 눈도 젖어든다.
-----목필균 시 「겨울 가로등」 전문


저녁 여섯 시, 주말의 고향집 빈 마당에 선다. 와르르 지청구 떨던 새소리가 욱을 때쯤, 뻐근한 사랑방 돌쩌귀 열고 창호문을 나서는데, 거기 대문 밖 갈림길 모롱이에 등롱잡이처럼 가로등 하나. 상주하는 사람이 오래 전부터 없어진 이 집을 밤마다 저렇게 ‘지켜보는’ 불빛이 바로 ‘가슴 저미는’ 그 무엇일까? 고개 숙인 외등 위로 하늘엔 인광이 한두 잎 핀다.

저 불빛의 내력이 사람 사는 것과 비슷하다. 섬진강댐의 푸른 낙차 소리로 태어났거나, 대관령 둔덕에 훠이훠이 날개처럼 자랐거나, 혹은 가파도 앞 단단한 파도의 어깨였고, 혹은 이글거리며 시공을 지배하는 태양이었던 너. 그 물과 바람과 빛을 쟁여, 이 우금 저 우금에 머리끄덩이 이어가고, 이 산 저 산 첨탑으로 딛고 넘어 여기까지 왔는데, 지은 죄 하나 없이 대낮이면 갇혀 살다가, 눈 앞 세상 모두 캄캄한 ‘겨울 밤 맨발로 서서’, 저 홀로 겨우 반경 칠 미터 마당만 ‘비추는’ 그의 팔자가 어쩌면 ‘내 것’인 양 문득 안타깝다.

삭풍이 솔잎처럼 이마를 찌르고, 오쓸오쓸 댓잎이 귀밑을 하비는데, 이만 볼트 가슴을 토해내는 너의 하심(下心)은 점점 더 밝아지는구나. 물러선 어둠 너머의 세상을 듣지도 보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 순리인 것처럼, 우두망찰 제 ‘발등’을 내려다보는 지금 우리는 서로 ‘안타까움’으로 ‘젖어든다.’ 빛과 어둠의 경계가 더욱 분명해지는 시간, 검은 수의 두르고 누군가의 임종을 기다리는 조종처럼, 우리는 마주 서 있다.

너에게도 지난 날 푸른 물과 살뜰한 바람이 있었듯, 나에게도 ‘시들지 않은 종이꽃’ 같은 사랑이 이곳에 있었다. 새벽 댓바람에 사립문 가득 지겟다리 밀치고 들어서던 사내도 있었고, 늦은 호롱가 윗목에 돗바늘 누비이불 시치던 아낙도 있었다. 머리칼 세고 눈이 째진 아이, 팔뚝이 굵고 보리밥을 훌쳐 먹던 아이, 다리가 길고 이마가 훠언한 아이, 그리고 가장 오래 산 아이까지 모두 이 집에 있었다. 마루 아래 멍석이 궐련처럼, 굴뚝 옆 복실이가 똬리처럼, 앞마당에 짚 뒤주가 망산(望山)처럼, 외양간 구유 앞 암소가 노동의 콧김처럼 있었다.

애써 밀쳐 감추었던 우리의 사랑이 눅어 ‘번지는’ 새벽, 사윈 ‘종이꽃’의 재 같은 한 두 송이 눈꽃이 조사(弔詞)처럼 어른거린다. 너는 다시 눈을 감고 대지에 선 채로 잠들겠지만, 나는 다시 희멀건 옷자락에 묻은 한 줌의 설흔을 훌훌 털어내고 도시의 일터로 떠나야 한다. ‘시들지 않았어도 품을 수 없는 그 사랑의 향기’를 남기고, 나는 이 집을 또 비워두어야 한다. 나는 아직 그림자가 붙은 사람, 그 목숨은 슬퍼서 질긴 것이라서.

권용욱 시인




권용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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