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58 호

시가 있는 창 (42) 언어의 하느님이신 침묵

나는 별아저씨
별아 나를 삼촌이라 불러다오
별아 나는 너의 삼촌
나는 별아저씨
 
나는 바람남편
바람아 나를 서방이라고 불러다오
너와 나는 마음이 아주 잘 맞아
나는 바람남편이지
 
나는 그리고 침묵의 아들
어머니이신 침묵
언어의 하느님이신 침묵의
돔Dome 아래서
나는 예배한다
우리의 생生은 침묵
우리의 죽음은 말의 시작
 
이 천하 못된 사랑을 보아라
나는 별아저씨


정현종 시 「나는 별아저씨」 전문


                                 

시가 있는 창 사진TV에 나오는 가수들을 보면서, 아, 나도 저들처럼 일생을 노래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종종 했다. 나는 노래에 애초 소질이 없어 가수는 못되었으나 시인으로 겨우 이름을 올렸다. 그러고는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 있었다. 직업으로 노래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를.

시인 역시 노래하는 존재다. 노래해야 하는 존재다. 꿈꾸지 않고 노래하지 않는 시인이 무슨 존재의미가 있을까. 이 세상에 없는 자기만의 꿈, 자기만의 노래를 가진다는 건 정말 고통이다. 나 같은 초라한 시인에게 꿈을 꾸라 하고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라 한다면 처음부터 잘못된 곡절이다.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그 언어라는 게 얼마나 허망하고 속없는 줄을 안다면 그런 말은 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시인은 침묵을 배운다. 침묵은 언어의 하느님. 애기 울음처럼 와장창 하고 속에서 무언가 터져나왔으면 좋으련만. 그것이 속에서 오래 오래 응어리진 어혈 한 움큼이라도 좋으련만.

시인은 언어를 노래하는 자가 아니라, 원래 제 것이 아니었던 언어와 날마다 사투한다. 대개의 경우 피 흘리고 쓰러지고 절망하는 쪽은 시인이다. 시인은 한편의 시를 완성할 때마다 몇 번씩 쓰러지고 죽는다. 죽음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언어 하나를 구하게 되는 것이다. 죽음으로써 이루어가는 사랑.

영원이 없듯 완성이란 것도 기실 없는 것이다. 시도 사랑도 마찬가지다. 삭막한 언어의 감옥에서 시인은 침묵을 예배한다. 시인의 세상 바깥에서는 오늘도 아기자기한 꽃이 피어 바람에 흔들릴 것이며, 꽃은 그 바람에게 조금 향기를 얹어주었을 것이다. 그 향기 모락모락 하늘로 올라 별이 되겠지.

별아, 나를 삼촌이라 불러다오
바람아, 나를 서방이라고 불러다오

어떤 깨달음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내 오랜 기다림의 끝에 자그마한 침묵 조각이라도 구할 수 있을 요량이면……. 바람에게서 먼지에게서 풀에게서……, 나는 몇 번이나 죽음을 꿈꾼다.


박윤규 시인



박윤규
(시인)
OPEN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