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57 호
시가 있는 창 <41> 또 다른 고향
윤동주 시인의 유고를 끝까지 지켜내 세상에 빛을 보게 한 친구 정병욱 가옥. 올해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유고 복사본이 전시돼 있다.
故鄕(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白骨(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었다.
어둔 房(방)은 宇宙(우주)로 通(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風化作用(풍화작용)하는
白骨(백골)을 드려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白骨(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魂(혼)이 우는 것이냐
志操(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故鄕(고향)에 가자.
----- 윤동주 시 「또 다른 故鄕」 전문
세월의 굴곡대로 구불구불 흐르다, 섬진강은 이곳 망덕포구에서 쉰다. ‘고향에 돌아온 날’처럼, 다시 바다로 가기 전 온몸 햇살에 씻는다. 지친 일상을 묶고 나루에 건듯건듯 졸고 있는 빈 배 바라보며, 여기 허름한 집 한 채가 기다리고 있다. 윤동주의 육필원고를 끝내 지켜낸 백영 정병욱의 가옥. 마루 밑 단지 속에서 살아난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유고시집 중에 나는 이 시(또 다른 故鄕)를 더욱 좋아한다.
갈수록 하루가 너무 짧다. 세월에 ‘풍화’되는 ‘백골’을 꼬박꼬박 곁에 잠재우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하루의 무게는 자꾸 가벼워진다. 어디서 뭔가를 놓친 것 같고, 누구와 무슨 얘기를 더 나눠야 할 것 같고, 한 치의 틈이 없는 세월에 속은 것도 같고… 나에게 ‘아름다운 혼’이 남았으면, 아쉽고 서러워 한껏 울어야 할 밤들이 그저 속절없이 지나간다. ‘어둠을 짖는 개’보다도 더 ‘지조’없이 하루와 기꺼이 타협하고, 내일이 오늘과 다름없음을 오히려 다행으로 기대하며 잠든다. 산다는 건 영혼이 아니라 육신이 바탕임을 갈수록 인정한다.
그럴수록 나는 외롭다. 내 없이도 아귀 맞아 돌아가는 세상, 그 어느 한 구석의 조촐한 내 삶을 자각할수록, 나는 마냥 ‘백골’로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싶다. 눈에 마주치는 대로, 귓바퀴에 걸리는 대로, 모두 긍정하는 삶이 정직한 태도인 줄 알면서도, 본전 못 찾는 고민을 수시로 자처하고, 몸이 알아서 조종하는 일상의 고정을 반성하고, 내일은 운동도 하고 책을 마저 읽으리라 희망을 품는다. ‘쫓기우는 사람’처럼 잠들지 못하고 ‘또 다른 고향’을 찾으려는 나는, 이 매정하고 터무니없는 삶에 한갓진 사치를 즐기는 걸까?
나만 이런 사치를 품은 걸까?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부여잡고 무작정 어딘가로 떠나는 까닭은? 검은 씨를 품고 낯빛 곱게 행인을 유혹하는 자두의 속셈은? 하늘의 별을 따듯 다부지게 고개 치켜들고 외치는 개구리들의 꿈은? 몸이 두 동강 나더라도 젖은 아스팔트 배밀이로 건너가는 지렁이의 다짐은? 모이고 모여 주저 없이 무량한 바다로 꾸역꾸역 모여드는 섬진강물의 속내는? 바위가 고요히 앉아서도, 비와 바람에 조금씩 몸을 둥글게 단단하게 여미고 있다. 달라질 내일, ‘또 다른 고향’을 꿈꾸지 않는 것은, 없다.
그래, ‘가자 가자.’ 내가 꿈꾸는 피안이 비록 ‘아름다운’ 언덕이 아닐지라도, 이대로 가만히 시간에 편승할 수만은 없다. 이국의 싸늘한 감방에서 어처구니없이 저버린 그의 꿈을 위해서라도, 불어도 불어간 만큼 다시 채우는 바람처럼, 시인은 시에 횃불을 달고 나아가고, 우리는 나태한 정신을 가다듬고 나아가야 한다. 그래도 마음 다잡지 못해 주저한다면, 가끔 여기 망덕포구에 와서, 마루 아래 숨어서도 기어이 꿈을 꾸던 그의 시를 되새기자.

권용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