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56 호
시가 있는 창 <40> 꽃과 시詩의 힘

사진 박준홍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은, 「그 꽃」 전문
꽃은 힘이 세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꽃은 향기를 뿜어 벌 나비를 불러들이는 힘, 열매를 맺어 대를 잇는 힘을 지녔다. 꽃이 사람에게는 사랑을 이루게 하는 힘, 화난 사람을 웃게 하는 힘, 병든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힘을 내뿜기도 한다.
시도 힘이 세다. 시가 사람에게는 위로와 치유의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자들은 시를 통해 평안을 찾기도 한다. 그래서 꽃과 시는 힘이 세다.
오래전 백담사 입구에 있는 고은 시인의 시비 앞에 선 적 있다. 제목이 없었다. 제목을 훗날 ‘그 꽃’이라고 붙였기 때문이다. 시인의 이름 아래 15자의 시가 새겨져 있었다. 시인은 제목 없는 단문 두 문장을 3행으로 나눠 놓았다. 여태껏 내 가슴속에 새겨져 있는 시이다. 좋은 시라고 하면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는 시’이고, 위대한 시라고 하면 ‘가슴속에 새겨지는 시’가 아닐까.
그때 힘겹게 대청봉에 올랐다. 봉정암을 거쳐 내려올 때 산의 경관과 포근함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하산하여 백담사 앞에 이르러 시비에 새겨진 이 짧은 시 한 편을 읽고, 이 시의 위대함에 전율을 느꼈다.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는 체험을 했다. 시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감탄할 것이다.
이 시를 통해 삶의 철학적 치열성과 시의 가치를 깨달았다. 산의 오름은 젊음, 내림은 늙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앞만 보고 허겁지겁 살아온 철없던 젊은 시절에는 이기적인 마음이 가득하여 세상의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고 사그라져 가는 노년에 접어들면 삶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이 열리고, 세상의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을 발견해 내는 눈을 갖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어쩌면 ‘그 꽃’은 ‘화려한 죽음’을 암시한 것일 수도 있다. 혈기왕성할 때는 죽음이 두렵지만, 늙고 힘이 없어지면 죽음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이처럼 꽃과 시는 힘이 세다. 가슴속에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달아 주기도 한다. 마음속 깊은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반백을 넘긴 삶, 더는 오를 수 없다. 늘 하산하는 중이다. 오늘도 두루두루 살피는 새로운 눈이 돋아난다.
신기용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