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55 호
시가 있는 창 <39> 오월, 나무로부터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
나는 정지의 미美에 너무나 등한하였다
나무여 영혼이여
가벼운 참새같이 나는 잠시 너의
흉하지 않은 가지 위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
성장成長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현인賢人들이 하여온 일
정리整理는
전란에 시달린 이십세기 시인들이 하여 놓은 일
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영혼은
그리고 교훈은 명령은
나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過剩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이지만
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다
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도 안다
지지한 노래를
더러운 노래를 생기 없는 노래를
아아 하나의 명령命令을
--- 김수영 시 「서시序詩」 전문
날이 어둡다. 봄이 오고, 이제 생기가 좀 흘러야 할 시대인데도 한낮의 하늘은 뿌옇기만 하다. 미세먼지에 나는 컥컥거린다. 해야 할 말들이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목구멍을 넘어오지 않는다.
오월이 되어 푸르기만 한 나무를 본다. 나는 언제 내 생의 초록을 다해 저리 환하게 향기를 뿜어본 적이 있었던가. 그 기억이 너무 멀다. 이런 때 머릿속은 하얘진다. 갈래 갈래의 실타래들이 서로 엉켜 어디서부터 이 생각을 풀어놓아야 할지 막막해진다. 내 삶의 자리를 여백으로 잠시 비워두고 잠적이라도 좀 하고 싶은데 그것도 쉽지가 않다.
써야할 시의 언어들이 눈앞에서 허공에서 빙빙 맴도는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영혼이 없다. 나의 삶은 많은 명령에 의해 조작되어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명령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 한 나절이 지나도록 나의 자취는 어디를 떠다녔던 것일까. 오늘 밤 나는 또 어떤 명령들에 둘러싸여 생을 강요당하고 있을까.
지나온 길들이 점점 어두워진다. 나무들이 형체를 버리기 시작한다. 보여지는 것들, 내 앞에 나타나는 풍경들이 저렇게 기운이 없다. 돌이켜 보면 나는 나를 위해 전혀 다른 생각을 꿈꾸지 않았다. 그저 주어진 대로, 그것이 어둠의 길일지라도 그 길을 즐기며 찬양하는 부엉이의 노래, 명령을 복종하는 지지한 노래, 칙칙해진 세상을 위한 생기 없는 노래를 꿈꾸었던 것이다.
살면서, 살아오면서 세상의 길들은 잠시라도 나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언제나 나를 둘러싼 바깥의 명령은 나를 피곤케 했다. 이 탁한 바람에 컥컥거리는 것도 같은 까닭이리라. 벌써 오월이 가고 있는데……. 그래, 이제라도, 한번이라도 저 나무들처럼 진심을 다해 나의 노래를 불러야겠다.

박윤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