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와 기름불로 덥힌 난방
두껍게 껴입고도 마음 추워오는 날
부뚜막 온기 불쑥 그립다
쭈그려 앉은 엄니가 하염없이 넣어주는
잘 마른 나무줄기와 가지와 이파리
꾸역꾸역 받아 삼키던 아궁이의 따뜻한 식욕
밤새 차가워진 온돌의 몸을 데웠지
잘 마른 나무일수록 연기의 향과 결이 고왔지
우리 삶의 나중도 그러하리라
수평의 물 수직으로 끌어올려 살았던 나무들
불 만나 재로 남은 것은 밭으로 갔고
영혼은 연기로 날아올라 산으로 갔지
----- 이재무 「숫겨울」 전문

어릴 적 가난한 동네의 아버지들은 어찌 그리 무능했을까. 그분들은 늘 부재중이셨다. 무슨 중한 일로 다들 바쁘셨는지 고단한 살림은 모두 어머니들이 꾸려나가셨다. 내 어머니도 항상 무거운 나뭇단을 머리에 이고 산에서 내려오셨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어머니가 검은 치마를 끈으로 동여매고 나무를 이고 오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물잠자리 같아 보였다.
여름엔 마당에 널어 말렸던 풀로 모깃불을 피워 놓고 평상에 누워 어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저녁을 지을 때면 잘 마른 풀을 아궁이에 넣고 팔각 성냥통의 성냥을 칙 그어 불을 붙이고 자잘한 나뭇가지들에서 굵은 가지로 불이 옮겨 붙는 모습을 지켜보며 뺨이 발갛게 달아오르기도 했다. 따뜻한 부뚜막에 앉아, 물이 끓는 솥에 어머니가 재빠른 손놀림으로 밀가루를 떼어 넣어 끓이는 수제비를 기다리며 침을 삼키곤 했다.
윗목에 둔 자리끼가 꽝꽝 얼어붙는 한겨울 밤, 언니들과 서로 따뜻한 아랫목에 발을 넣으려고 경쟁하며 자고 일어나면 뜨거운 온돌에 데어 복숭아뼈 부근에 물집이 생기기도 했다. 아궁이에 남은 재를 집 옆 채마밭의 부추 위에 골고루 뿌리는 것도 어머니의 일이었다. 어머니를 따라간 그 채마밭 가, 이슬이 축축한 풀의 감촉과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 오르던 곤충들, 커다란 왕잠자리는 높이 날아서 어디로 가는지...... 밥 짓는 연기냄새가 아늑하던 유년의 기억이 아름다운 건 모두 어머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돈이 생길 일도 없는 그 살림살이를, 때마다 뭔가를 가족들에게 해 먹여야하는 그 궁핍을 어머니는 어떻게 헤쳐 나왔을까 싶다. 지금이야 없어 배곯는 일보다 적게 먹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또 한 끼 넘어갔다”하시던 어머니 목소리가 지금도 종종 떠오른다.
벌써 물든 가로수 잎들이 바람에 흩어진다. 봄부터 여름까지 기를 쓰고 같은 유행을 쫓아가던 초록이, 이게 아닌데...... 하는 깨달음의 순간이라도 왔는지 각각 제 빛깔로 아름답다가 찬바람에 떨어진다. 이제 곧 ‘두껍게 껴입고도 마음 추워오는 날’ 추워하면서 이제는 안 계신 어머니와 뜨뜻하게 군불을 넣은 아랫목을 그리워할 겨울이 오겠다.
전명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