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엄마 생각」 전문

그림 / 박수근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멀리 파란 바다가 건너보이는 고향 뒷산 언덕배기, 하얀 삼베적삼으로 누우신 자리에 오늘은 몸을 낮춘 꽃들이 피었습니다. 갯가에서 비린 내음의 은은한 바람이 불어줍니다. 삐걱거리는 목선의 물결 넘는 소리가 들려옴직도 합니다.
사람 살아가는 일이 그때나 지금이나 어찌 곤궁치 않겠습니까마는, 그 시절의 가난마저 이리 아름다움으로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것은 무슨 일입니까?
어머니는 바다를 그리 좋아하셨지요. 부산으로 무작정 옮겨와 영도에 작은 집을 마련한 것도 고향바다를 마음에 늘 두고 계셨던 게지요. 어머니는 틈나면 바다를 찾으셨고, 어머니께서 바다를 가신 날은 저녁 찬거리가 푸짐했습니다. 파래며 미역, 곰피에, 게와 고동, 대합까지 밥상에는 고향바다가 출렁이고 있었답니다.
삶에 매달려 바동거렸던 시간들. 여름의 그 따가운 뙤약볕 아래서, 시장에 삶은 고구마 좌판 하나 벌여 놓고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시던 어머니. 그것은 사랑 이전에 생존이었을 겁니다. 우리 다섯 남매는 어머니의 품 안에서 그저 철없이 뛰어놀았습니다. 저녁이면 팔리지 않은 고구마로 허기를 메우던 시절.
장사가 잘된 날이면 큰 수박 한 덩이 사서 화채를 만들어 옥상에서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던 그 여름날 저녁. 어머니께서 흥얼거리시던 ‘처녀 뱃사공’ 노래. 수박 껍질은 곱게 벗겨 다음날 박나물로 아버지 밥상에 올려졌지요.
흘린 음식에 복 들었다는 어머니 말씀에, 먹던 국수를 상 위에 그대로 부어 집어먹던 어린 시절.
어머니. 아픈 시간은 멀리 떠나올수록 은은한 색채로 덧칠되어 다가옵니다. 하늘 한 가득 구름이 몰려와 흐릿한 날씨입니다. 고향마을 어머니 누우신 자리에 칡넝쿨 지고 이른 나뭇잎 몇 장 내려앉았습니다.
지난 기억 하나하나가 아쉬움으로 후회로 남아 있지만요, 그러나 내 지금의 시간이 또 새로운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사랑하면서, 애써 살겠습니다.
박윤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