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윤동주, 「팔복-마태복음의 팔복 中에서」

작은 텃밭에 뿌려둔 씨앗에서 싹이 돋는가 싶더니 언제 한 뼘이나 자랐다. 이른 아침나절부터 콩새들 날아와 폴짝이면서 그네타기를 한다. 봄이다. 사방에 봄이 지천이다.
봄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꽃도 새도 바람도 햇살도 이렇게 함께 어울려서 힘찬 봄을 만드는 것이다. 봄은 물결 같은 것이어서, 돌아앉아 있는 이에게도 제 이름을 버리고 어디 깊이 숨어버린 이에게도 봄의 파장은 밀려오고 밀려간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 5장 3~10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픔의 무게는 인생의 무게다. 슬픔이라는 것이 이미 지나간 기억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가슴에 두는 자는 행복하다. 슬퍼하는 자는, 슬픔을 볼 줄 아는 자이다. 슬퍼하는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무겁게 할 줄 안다. 그의 얼굴을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고마워할 줄 알며, 창가에 와 지저귀는 새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안다. 꽃이 피고지는 것에 연민하며, 떠나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을 줄 안다.
붓다는 말씀한다. 죽은 후 그 불생불멸한 세상에서 영생을 꿈꾸는 자들은 어리석지 않은가?
이미 지나간 아픔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슬퍼하는 자.
슬픔이란, 반성하며 기억하며, 그래서 새로운 희망을 향한 시선이다. 그저 주어지고 받아야 하는 운명이 아니라, 내일은 조금 덜 아프기 위한 몸부림,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비로소 인간다워지는 것일지니.
박윤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