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마다 열리는 아파트장날입니다.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는데 과일코너 총각이 소리를 지릅니다.
무화과 한 박스에 만이천원짜리가 단돈 오천원이라고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갑니다. 커다랗고 탐스러운 무화과가 빨간 속살을 살짝 내보이며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박스 속 무화과를 보는 순간 대구에 살던 주인집 아저씨가 떠올랐습니다.
신혼 때 2층 주택에 살던 시절, 주인집 화단에 커다란 무화과나무가 있었습니다.
끝자락이 2층에까지 닿아서 무화과가 익는 계절이 오면 아침마다 끝이 톡톡 벌어진 무화과를 하나씩 몰래몰래 따먹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열매가 떨어져 나올 때마다 하얀 진액을 보여주던 오래된 무화과나무가 그립습니다.
큰아이 출산했을 때 주인아주머니께서는 예쁜 내복을 사주시며 축하해 주시고 늘 미소로 대해주셨습니다.
어느 날 시장을 다녀오는데 문 앞에 신문지에 뭔가가 있어서 열어보니 잘 익은 무화과가 한가득 있었습니다.
인사를 드려도 늘 무뚝뚝하시던 아저씨께서 무화과를 따다가 가져다 놓으신 겁니다.
순간 반가우면서도 혹시 몰래 따먹던 무화과가 들킨 건 아닌지 고민이 되기도 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다 아저씨를 마주쳐서 순간 움찔하면서 “무화과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드렸더니 웃으시면서 “익을 때마다 언제든지 따서 먹어요, 새댁” 그러시는 겁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오래되고 큰 무화과나무처럼 우리의 신혼생활을 편안하게 돌봐주셨습니다.
그렇게 가을이 익어가고 또 무화과가 익고, 그렇게 계절이 몇 번 바뀌고 남편의 직장을 따라 우리는 부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사 오던 날 우리는 서운한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려고 문을 두드렸는데 인기척이 없어서 외출하셨나 보다 하고 ‘어림 마음’에 부산으로 왔습니다.
도착하고 주인아주머니께서 전화가 와서 인사도 없이 갔다고 서운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리가 아파서 혹시 방해가 될까봐 집에 있다가 잠시 잠들었는데 그냥 갔다고 전화기 너머에서 서운한 목소리에 화도 약간 섞여 있었습니다.
죄송하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늘 개운하지 않은 끝인사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시골 갈 때 대구를 지나칠 때면 그분들은 잘 계실까 안부가 늘 궁금합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무화과를 볼 때마다 그분들이 그리운 건 지나간 추억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늘 우리 부부의 마음속에서 감사함과 고마움으로, 오래된 무화과나무 그늘처럼 우리를 품어주고 계신다는 걸 박스 속 옹기종기 무화과를 보면서 다시금 깨닫습니다.
이선미(덕포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