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이 지배할 때
굶주림은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웨이트리스는 생각하기 시작한다,
승객들은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스튜어디스는 생각하기 시작한다,
환자는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약사는 생각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평론가는 생각하기 시작한다-
혼란이 지배할 때
나 역시, 사랑하는 이여, 당신이 나를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니노 니꼴로프 <혼란> 전문

혼란 속에서, 바이러스에 오염된 공기 속에서, 사회적인 발언을 해야만 될 것 같은 부담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말도 너무 많다. 원인 해석과 책임론과 처방이 난무하지만 숨이 막힐 것같이 답답할 뿐이다. 이렇게 앞이 안보일 것처럼 갑갑할 때는 몇 백 년 된 느티나무 그늘 같은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다. 죽어가는 강 대신 시냇물이 졸졸 흘러가는 소리를 듣고 싶다. 보일 듯 말 듯, 송사리가 떠내려가지 않으려 살살 지느러미를 흔들고 있는 깨끗한 물을 보면서 푸르게 짙어가는 산그늘에 묻히고 싶다. 부처님도 독화살에 맞아서 죽어가는 사람이 당장 치료를 해야지 이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같은 생각은 나중에 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숨이라도 좀 시원하게 쉬고 나야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TV를 끄고 스마트폰의 전원을 눌러 끈다. 갑자기 정적이 찾아온다. 이윽고 와글거리던 잡념들이 가라앉으면 싸르락싸르락 쌀을 씻어 잡곡도 섞이지 않은 하얀 쌀밥을 지어야겠다. 김치와 된장국, 깨소금이랑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린 나물 반찬에 식구들과 말없이 더운밥을 먹어야겠다. 그리고 조용한 밤을 맞아 남창으로 찾아온 달빛을 받으며 잠을 자야겠다. 우리는 너무 피로하니까. 피로가 겹치고 겹쳐 나가떨어지기 전에, 그러기 전에.
한숨 푹 자고 나면 다시 무엇이든 할 기력이 생기리라. 도대체 이렇게 힘든 이유가 무언지,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이런 현실이 누구의 잘못인지, 아니면 그저 재앙인지, 따져봐야겠다.
여름 태양이 끓어오르기 전에 좀 불편하게 살겠다는 각오를 새삼 다지면서…….
전명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