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 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 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백석, 〈수라修羅〉 전문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고통이다. 나를 이해해 주고, 함께 다투다가도 금방 용서와 화해로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있는 어디에, 내가 돌아갈 거기가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아침부터 작은 텃밭에 귀여운 새들 몇 마리 다녀간다. 그것들이 재재거리다 떠난 자리에 무슨 기하학적 무늬 같은 발자국들과 오순도순한 지저귐이 흩어져 있다. 이제 막 모양새를 갖추어 가는 나의 텃밭에 저들은 귀한 노래와 행복을 뿌려주고 간 것이다. 상추나 열무 같은 그 흔한 푸성귀들이 흙과 햇살과 이슬로만 자라겠는가. 자연은 함께 있는 것이며, 함께 생각하는 것이며, 함께 어우러져 나는 것임을 알겠다. 어디 푸성귀뿐이랴. 저들이 앉았다 떠난 나뭇가지, 흘려둔 바람에게조차 행복 냄새가 난다. 내일 아침에도 이슬 채 걷어지기 전에 저들이 무사히 다시 찾아와 주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서로 말 안 해도, 그렇게 ‘가족’이란 따뜻한 한 그릇의 밥 같은 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나 내 기쁨의 시작이, 그리고 크고 작은 상처를 다독이며 갈앉히는 힘이 거기에 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가야할 곳도 많고 거기서 나는 또 어디서 어떤 맥을 놓고 한 다발의 아픔을 가져야 할지 모른다. 세상은 많은 ‘부자연’으로 나를 막아서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돌아갈 곳은 ‘자연’이다. 그 자연스러움의 처음은 ‘가족’이니.
그렇게 사람은 한세상을 견디며 부대끼며 건너가는 것이다.
박 윤 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