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임)
닭이 울고 날이 새고
설날 아침이다.
새해 새아침 아침이라 그런지
까치도 한두 마리 잊지 않고 찾아와
대추나무 위에서 운다.
까치야 까치야 뭣하러 왔나
때때옷도 없고 색동저고리도 없는 이 마을에
이제 우리집에는 너를 반겨줄 고사리손도 없고
너를 맞아 재롱 피울 강아지도 없단다.
좋은 소식 가지고 왔거들랑 까치야
돈이며 명예 같은 것은
그런 것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나 죄다 주고
나이 마흔에 시집올 처녀를 구하지 못하는
우리 아우 덕종이한테는
형이 주눅이 들지 않도록
사랑의 노래나 하나 남겨두고 가렴
김남주 시, 〈설날 아침에〉 부분

한 해를 보내고 다시 한 해를 맞이한다는 것이 설렘이던 때가 있었다. 막연한 그리움이던 때가 있었다. 왠지 달라질 것만 같고, 좋은 일들이 총총 쏟아질 것만 같고, 하는 일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기쁨이 되어줄 것 같은……, 그런 예감으로 그냥 새해가, 설날이 기다려지던 때가 있었다.
한 해 두 해 세월을 넘기다 보니 그게 아닌 줄을 알기 시작했다. 지난해는 마냥 어둠인데 새해만 환한 밝음일 수 없다는 것도 알겠다. 새해라서 물가는 더 오르고 사람살이는 더 척박해질 지도 모른다. 입춘이 지난 지 오래인데도 봄이 올 기색은 없고, 마음은 자꾸 뒤숭숭하다. 희망이란 말을 믿지 않기로 한 것도 오래 되었다. 그렇다고 나는 절망하지도 않는다. 절망이란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고. 그래, 절망하는 사람만이 희망을 기억할 수도 있겠다. 절망하는 일조차 심심하게 느껴지니, 나는 이만큼 나이 들어버린 것인가.
설날 아침에, 그래도 내 시린 마음에 까치 서너 마리 날아와 앉는다. 그 고운 때깔은 언제 봐도 꼬마들 입은 때때옷을 빼닮았다. 그 노는 모습은 꼬마애들이 재롱부리고 장난하는 모습과 꼭 닮았다. 자그마한 붉은 열매 한 알 입에 물고는 저리 즐거워한다.
새해……, 새날……
사람 사는 일이 갑자기 홱 바뀔 일이야 없다 하더라도, 어쩌다 신나는 일 하나쯤 생겨났으면 좋겠다. 날마다 들리는 뒤숭숭한 소식 말고, 돈 때문에 어디론가 밤중에 홀홀히 사라져버린 친구에게서 잘 살고 있다는 전화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 어두운 날들을 밝혀갈 어린이들이 쑥쑥 자라는 봄날이었으면 좋겠다. 내 가슴 속에 푸른 그리움 한 줄 출렁이는 봄날이었으면 좋겠다.
박 윤 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