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여 년 전 엄궁동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장군샘’과 ‘큰샘’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장군샘’은 예전에 엄궁교 위에 살던 산동네 사람들이 주로 길러 먹던 엄궁에서 제일 좋은 샘이었다. 조선시대에 이 물을 먹고 자란 소년이 훗날 장군이 됐다고 해서 ‘장군샘’이란 이름이 붙게 됐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러한 ‘장군샘’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해 엄궁 산마을이 형성됐다고 한다.
승학산이 활처럼 품에 안고 있는 엄궁동이 새로운 주택단지로 변하면서 장군샘터 주변은 복합 상가 건물로 바뀌었고, 지금은 엄궁 토박이들만이 장군샘의 내력을 알고 있을 뿐이다.
‘큰새미걸’이라고도 불리었던 ‘큰샘’은 1800년대에 만들어진 윗샘과 아랫샘이 있었으나 주택단지와 도로개설로 윗샘은 없어지고 아랫샘만 남아있다. 현재 엄궁파출소 옆에 주민들이 두레박으로 길러 먹던 공동우물이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우물가는 아낙네들이 물을 긷고 채소류를 씻거나 마을 아낙네들의 온갖 수다가 이어졌다. 공동우물이 그렇듯, 큰샘 역시 생활용수의 주공급원에다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정보의 중심이었다.
특히 논과 밭이 부족했던 엄궁 마을의 남정네들은 주로 배를 타고 낙동강에서 재첩을 잡았으며, 아낙네들은 큰샘의 물을 길러, 재첩을 씻어 국을 끓인 다음, 새벽녘이면 재첩국을 양동이에 담아서 머리에 이고 학장을 지나 구덕고개를 넘어 대신동 지역으로 팔러 다녔다 한다.
엄궁동 주민들의 생활 속의 한 가운데 있었던 아랫큰샘은 1980년대 초반에 상수도가 보급되면서 차츰 폐허가 됐다.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엄궁동 주민들의 염원을 모아 2012년 10월에 주변을 산뜻하게 정비했다.
사라진 장군샘, 윗큰샘 대신 홀로 남아 보존되고 있는 아랫큰샘은 엄궁동 지역주민들의 애환 담긴 삶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강 은 수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