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27 호

시가 있는 창 <12> 손에 손 잡고

자유로운 것만 아니었다
광장에서
거리에서
골목에서
박수를, 함성을, 달리는 법을 배웠다

희망이 늘 있지 않았다
지하에서
다락방에서
막장에서
절규를, 침묵을, 체념을 경험했다

즐거움도 가끔 있있다

------  서정원 〈스냅사진 - 서시〉 전문

 

 

 

 

새해 첫날 난(蘭)이 꽃 폈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어 새해 인사를 겸해 지인들에게 꽃소식을 전했다. 사진을 받은 사람들 중 일부는 올 한 해 길조를 점치며 설렌 마음을 담아 답장을 보내왔고, 일부는 묵묵 침묵했다. 침묵한 이들 중에는 지난 한 해를 힘겹게 보낸 이들의 이름이 들어있었다. 그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꽃을 핑계로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 무거운 등짐을 아직 부리지 못했는지 서늘한 한숨이 흘러 나왔다. 무게와 내용만 달랐지 너나없이 힘든 한 해를 보낸 터였다. 이제 그만 깊은 그늘에서 벗어나야하지 않겠냐는 말은 삼켰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상투적인 말 대신 시간 내어 따뜻한 밥 한 끼 먹자며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자리가 자리를 만들었다. 주린 마음을 덥혀보자는 말의 소문을 타고 반가운 얼굴들이 함께 자리를 했다. 구체적이지 않은 계획, 보장되지 않은 막연한 미래, 끝을 내지 못한 일들과 새로 추진하고 있는 일들. 대화는 뜨거웠다. 대책 없는 뜨거움은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또다시 험난함을 예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슬픔이나 고통은 이미 털어놓는 순간 그 무게가 사라진다. 시간이 무르익어가며 웃음소리도 커졌다. 방전도 쉽지만 충전도 쉽게 되는 사람들.


절로 피는 꽃이 아니었구나. 적당한 부침과 적당한 체념과 적당한 인내가 그날 꽃 한 송이로 피어났구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잡는다. 이 순간을 기억하리라. 맞잡은 손은 또 다시 어느 길목에서 넘어진 누군가를 일으켜주고, 지쳐 뒤처진 누군가의 손을 잡아끌어 줄 것이다. 혼자가 아니기에 갈 수 있는 길. 슬픔이든 기쁨이든 우리가 함께 하는 이유다.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진 명 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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