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24 호

시가 있는 창 <9> 시간 여행

낙엽송 숲이었건만 대낮이었건만 숲은 어두웠다
어두운 숲 속에 들어가 있으면
어릴 적 아무도 없는 빈 방에 무섭게 담겨 있던 생각이 난다
언제나 숲은 적막의 생기가 넘친다
숲과 숲 사이, 영원으로 열려 있던 오솔길을
혼자 걸어갔던 게 언제였던가
칠레의 숲에 서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이 지구를 모른다
고 노래한 시인은 누구였던가
숲속으로 들어갈수록 숲은 까마득하고 침묵은 떨린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바람 소리도 끊어진 오직 침묵만이 그대로인 숲을
홀로 걸어 자연 속으로 들어갔던 게 언제였던가
오랜만에 숲에 담겨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낙엽송 숲이었건만 대낮이었건만 숲은 어두웠다

박용하 〈몽상의 숲〉 전문

 

 

몇 가지의 꿈을 한 번에 꿀 수 있는 그 곳에 가지 않겠니? 회심의 미소는 세상의 지도 따위야 무시한 뒤 나올 수 있지. 초청장에는 굵은 고딕체로 8가지의 꿈을 꿀 수 있는 곳. 당신의 미래를 열어보세요. 풍경처럼 꽃잎 하나 애처로이애처로이 매달려 제 몸을 흔들고 있었지.


몽상은 마음의 오솔길을 찾아 떠나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지. 오래 걸어야만 닿을 수 있는 고독한 여행의 끝자락엔 오래 묵은 술처럼 향취가 있는 길이 열리지. 일상의 잔치는 잠시 미뤄두고, 하염없이 늘어져 바닥만 기어 다니는 상념의 잔가지를 드리우고 풍성풍성 몽상의 숲 속 적막을 견뎌보지 않을래?


달콤한 시간은 오래 가지 않지. 가방은 가능한 가볍게 꾸릴 것. 돌아올 때 추억을 담아 올 수 있게 조금 넉넉하니 공간을 비울 것. 덩그마니 벌어진 여행 가방 속 그 날의 흔적이 자라는 걸 바라보는 일은 기분 좋은 일.


크고 작은 문들을 지나 우물처럼 깊어지는 숲으로 들어가면 8가지의 꿈을 꿀 수 있는 곳, 나무 팻말이 우릴 반겼지. 마지막 햇살이 막막히 제 빛을 거두는 시간이었지. 세상의 시간으로는 말할 수 없는 느리고 느린 모습으로 내려앉고 있었지. 오체투지. 침묵의 시간은 그 시간을 견딘 사람만이 만날 수 있지.


두근거리는 마음이 굳어지기 전 풍선처럼 가벼운 모습으로 몽상의 숲을 둥둥 떠다니지 않을래? 손을 잡아 주었지. 그리하여 비로소, 온전히, 참다운 미완의 몽상을 완성할 수 있는 곳. 사무치는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지.


진 명 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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