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20 호

시가 있는 창 <5> 벌레에게 배우다

흙도 가려울 때가 있다
씨앗이 썩어 싹이 되어 솟고
여린 뿌리 칭얼대며 품속 파고들 때
흙은 못 견디게 가려워 실실 웃으며
떡고물 같은 먼지 피워 올리는 것이다
눈 밝은 농부라면 그걸 금세 알아차리고
헛청에서 낮잠이나 퍼질러 자는 갈퀴 깨워
흙의 등이고 겨드랑이고 아랫도리고 장딴지고
슬슬 제 살처럼 긁어주고 있을 것이다
또 그걸 알고 으쓱으쓱 우쭐우쭐 맨머리 새싹은
갓 입학한 어린애들처럼 재잘대며 자랄 것이다
가려울 때를 알아 긁어주는 마음처럼
애틋한 사랑 어디 있을까
갈퀴를 만나 진저리치는 저 살들의 환희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사는 동안 가려워 갈퀴를 부른다
          
이재무 〈갈퀴〉 전문

 

 

도시에 살면서도 흙이 그리워 옥상에 텃밭을 만들었다. 깻잎이랑 상추 쑥갓 케일 고추모종을 욕심껏 심어놓고는 새들새들한 모종들이 흙내를 맡고 푸르게 자라기를 바랐다. 봄비를 맞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싱싱하게 자라는 이파리들을 보며 흐뭇했다. 이파리 하나 따먹기도 아까운 살뜰한 마음으로 그것들이 자라는 걸 지켜봤다.


어라! 그런데 어느 날부터 케일 이파리부터 하나 둘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더니 하루 이틀 지나는 사이 구멍이 점점 많아지고 기어이 잎맥만 남겨진 케일 잎들이 늘어났다. 나비가 날아다니는 걸 방심했더니 이 알량한 채마밭에다 알을 낳았던가 보다. 밝을 때는 보이지 않던 벌레들이 어두워진 뒤 손전등을 들고 올라가 보니 각자 제 것인 양 채소 잎에 하나씩 들러붙어 열심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온몸이 연두빛인 작은 벌레들을 보이는 족족 잡아내었다. 매일 벌레를 잡으며 유심히 지켜보다보니 벌레들에게 원칙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부드러운 잎을 먹되 지금 막 올라오는 가장 연한 새잎은 먹지 않았다. 그 원칙을 어기면 자기들의 앞날도 없다는 걸 어찌 알았을까.

 

아침에 일찍 옥상 밭으로 올라가 보면 푸성귀들 밑에서 참새들이 푸르르 날아 나왔다. 저들은 또 그곳에 벌레가 있는 줄 어찌 알았을까… 벌레들은 케일 잎부터 시작해서 깻잎들로 차례차례 옮아가며 갉아먹더니 어느새 제법 몸피가 커졌다. 저녁마다 새로 자란 이파리들을 벌레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따서 내려와서는 커다랗게 쌈을 싸 먹으며, 문득 이 이파리들이 내 것이라고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레들이 우선순서로 갉아 먹는 건 영양가가 많은 이파리부터다. 바꿔 말하면 그 옛날부터 벌레 먹은 흔적을 보고 사람들은 독초와 먹을 식물을 구분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이들에게 빚이 있고, 벌레들에게도 채소 잎을 먹을 당당한 권리가 있다. 그저 인색하지 않게 나눠 먹어야 할 뿐이다. 지구가 우리들만의 별이 아니기에 이 연약한 벌레의 삶도 존중받아야 하고, 원칙을 지켜야 살아남을 수 있음 또한 그들에게라도 새로 배워야 한다.


낮은 자세로 엎드려 보면 벌레의 길 끝에 눈부신 날개가 있다.     


전명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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