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20 호

야외수업과 천막교실을 아시나요

 

 

 

6.25가 일어난 지 벌써 64주년이 됐다. 사상지역의 최초 교육기관인 사상초등학교는 6.25와 관련된 특별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민족상잔의 전쟁 와중에 겪어야만 했던 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다.


사상초등학교는 6.25가 일어난 지 3개월 뒤 1950년 9월 미국의 육군통신부대가 학교에 진주하게 된다. 당시는 전쟁통이라 학교를 무조건 군인들에게 비워주고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지금의 사상교회 뒷산(당시는 면사무소 뒷산)에 텐트를 치고 천막교실에서 수업을 했다. 능인사 건너편 지금의 한빛아파트 자리는 야외수업 장소로 이용됐다. 그리고 괘법동 우리병원 뒤편 텃밭에 천막을 치고 수업을 했다. 동사무소의 빈칸도 곧잘 교실로 이용됐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1950년~1953년 사이에 사상초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로 당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겪었다.


그러던 1951년 1월 26일 사상초등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들의 실화로 학교 건물이 불탔으며, 이로 인해 학교의 온갖 서류도 함께 사라지는 비운을 겪었다. 학교를 미국 육군에게 비워준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학교가 불탄 것을 본 당시의 학생들은 물론 졸업생들도 발을 동동 구르며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세월이 6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모습은 잊을 수 없었다고 권세용(76)씨 등 당시에 학교를 다녔던 70대 어르신들은 생생히 기억한다.


사상초등학교 건물은 1953년 9월 벽돌로 지은 2층 양옥으로 복구돼 선생님과 학생들은 한 많은 야외교실과 천막교실 생활을 마치게 됐다. 이에 따라 실로 37개월 만에 학교로 돌아와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나이 어린 초등학생들로선 너무나 가슴 아픈 일들을 6.25로 인해 겪어야만 했다. 6.25 때 미군들의 진주로 학교에서 쫓겨나 받아야 했던 야외수업과 천막교실 수업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역사가 됐다.  

            
강 은 수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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