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19 호

종이접기

시가 있는 창  <4>
 

  그늘을 보면 누군가 한 번 접었다는 생각이 든다 길에서 누군

가를 만나거나 잃어버린 삶이 이쪽에 와 닿을 때 빛과 어둠 사이

오늘과 내일 사이

 

  수긍할 수 없는 것을 수긍해야 하는 날 접을 곳이 많았다 접은

곳을 문지르면 모서리가 빛났다 창문과 절벽은 무엇이 더 깊은가

 

  어떤 대답은 갑자기 사라졌다 모서리가 사라지듯 그런 날은 거

리에 전단지가 수북했다 수도자의 발자국처럼 바람에 떠밀리며

가는

 

죽은 자들의 창문이거나 한 장의 절벽

 

버릴 수 없는 고통의 한 쪽을 가장 잘 접은 곳에서 귀는 생긴다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을 몇 번 접으면 꽃이 되듯

 

종이처럼 눌린 분노를 접고 접으면 아름다운 거리가 된다

           
                                 여성민 〈접은 곳〉 부분

 

 

철 지난 잡지를 오려 종이접기를 한다. 화려한 그림보다 그늘 짙은 그림에 눈이 가는 것은 구겨져 본 일이 있다는 소리. 마음의 행색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는 곳은 환한 햇살이나 밝은 조명 아래가 아니다.


어떤 끈끈함이 막처럼 내리워져 애처로이 자기연민을 감싸 안아주는 곳. 접어보지 않았다면 바위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꼬물거리는 이끼를 어찌 보았으랴. 그 작은 생명체가 일구어 내는 생명의 끈끈함을 어찌 알았으랴.


울부짖는 사람들이 물가에 앉아 그늘을 만들고 있다. 구겨진 마음이여. 웅크린 몸이 구겨진 종이뭉치 같다. 더 이상 펼 일 없다, 체념을 누르며, 피어나는 희망을 누르며 종이를 접는다.


그늘은 소나기를 피하듯 햇살을 피하듯 삶의 뜨거움을 잠시 피하라고 우리에게 내려준 신의 가호이길. 신의 가호가 절실히 필요한 나날. 사각 네 귀퉁 종이를 손톱으로 꼭꼭 누른다. 누른 자국이 진할수록 각이 산다.


주저앉은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게 무엇인지, 모진 생이지만 다시 가파르게 가열차게 차고 일어서라 만드는 게 무엇인지. 이를 악물고 힘을 주어 종이를 접는다. 종이를 접어 만드는 게 제단 위 한 송이 꽃이 될지, 천 번을 접어 소원을 이루는 학이 될지, 구천을 떠돌 배 한 척 일지. 수북이 쌓여있는 철지난 잡지로 되풀이되는 삶의 아픔을 접고 있다.


진명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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