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래성 함락된 음력 4월 14일
사상9인의사연구제단에서 봉행
우리 사상지역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사상9인의사연구제단’이다. 임진왜란 때 관군으로, 의병으로 전쟁에 참전한 우리 고장 출신 장정들의 넋을 기리는 제사가 4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400여 년 동안 끊이지 않고 제사를 지내 온 근본적인 맥(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연구제단의 비문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사상지역의 젊은이들이 동래성과 다대포진영의 싸움터에 지원해 1592년 음력 4월 14일 동래성의 함락과 더불어 대부분 전사하였다고 한다.
이때 아홉 분의 생존자가 마을로 돌아와 주민들을 위로하고 마을 전체의 단합을 위해 매년 제사를 모시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돌아온 생환자는 모라, 덕포, 괘내, 감동, 주례 출신의 9명이다. 이 분들이 계(契)를 조직해 회산에 있는 팔경대에 제단을 설치, 제사를 지낸 것이 그 기원이다.
그리고 9인계(九人契)의 아홉 분이 돌아가시게 되자 그 뒤 후손들이 ‘연구계’(戀舊契)란 이름으로 계를 만들어 제사를 지내왔는데, 연구(戀舊)란 ‘옛 것을 사모(思慕)한다’는 뜻이다.
그때 아홉 분의 이름을 기록한 문서가 해방 이후까지 연구계에 보관되어 왔다고 하는데, 실무자가 분실해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없음이 안타까운 일이다.
이 ‘연구계’의 활동은 사상지역이 부산시로 편입되기 전에는 사상면 전체의 행사로 치러 각 지역에서 흩어져 살던 후손들과 마을 출신 인사들이 모여 선인들의 넋을 위로하고 정신을 이어 받는데 마음을 모았다고 한다.
비록 이 제향이 거국적인 규모가 되지 못하더라도, 400여 년의 세월 동안 계승되어 왔고 향토 역사를 일깨워주는 정신적 지주(支柱)임은 틀림없으리라 믿어진다.
올해도 사상9인의사연구제단보존회(회장 배봉석) 주관으로 5월 12일(음력 4월 14일로 동래성이 함락된 날) 오전에 제향을 올렸다. 많은 구민들이 참여, 9인의사의 넋을 기렸다.
강 은 수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