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12 호

시의 풍경31 - 동행

진명주(시인)

 

 

한 잎의 배추 이파리 속에는
딱딱한 씨앗의 흔적이 있다
땅속에 붙들린 씨앗의 날갯죽지 같은
한 잎의 배추 이파리 속에는
천둥과 먹구름의 일이 다 얼비치어 있고
소나기 냄새도 들어 있다
한 잎의 배추이파리 속에는
술꾼들이 지린 오줌발 끝의 욕설과
배추밭 이전의 쓰레기들 한숨과
〈중략〉
햇빛과 바람과 비와 흙이 악수하자고 내민 손바닥 같은
한 잎의 배춧잎을 보라
체념한 사람네 일이 다 우스워지고
지나간 사랑의 그림자도 불러올 수 있겠다
이 모든 것을 쑤욱쑤욱 연꽃송이들로 피워올린 배추밭
사는 일이 이리 다 명징해지는 한나절이다
           
문성해 〈가을 배추밭에서〉 부분

 

 

후배가 왔다. 저 결혼 합니다. 축하해주세요. 환하게 웃으며 내민 청첩장에는 꽃송이가 수 놓여져 있다. 후배의 옆에는 나팔꽃 같은 여인네가 서 있다. 후배가 힘들고 아파할 적마다 살아보자고 살아내자고 여린 순으로 가지를 받쳐 길을 틀며 지지대 역할을 한 일들은 익히 들은 터이다.


어디선가 은은하게 박하향이 났다. 세상 가장 튼튼한 울타리, 든든한 내 편인 삶의 동반자가 생긴 후배의 얼굴은 환하게 빛이 났다. 후배가 살아온 지난한 삶의 시간을 알기에 흐뭇한 마음과 콧잔등이 시큰해져 오는 알싸함이 묘하게 교차한다.


투박하고 거칠기만 한 내 삶에도 이런 봄날 이런 꽃날이 찾아오네요. 저녁을 먹는 내내 후배는 지난 시간을 더듬으며 울다가 웃다가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다가 자신의 모습이 멋쩍은지 씨익 웃으며 주먹으로 눈가를 문지른다. 옆에 앉아 있던 피앙세가 그 고운 손으로 굵고 거친 후배의 손을 꼬옥 잡는다. 그래 됐다. 그 손을 풀지 말고 그 힘으로 전진하렴.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 후배를 배웅하며 나는 얼마 전 본 TV 속 낙타의 행렬을 떠올린다.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죽음의 땅, 에티오피아 다나킬 소금 사막. 여름 낮의 온도가 60도를 오르내리고 밤도 30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곳. 그 사막에서 소금을 캐어 낙타에 싣고 멀리 떨어진 마을로 가 그 소금을 팔아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 무거운 소금을 메고 끝도 없이 걷고 걷던 낙타의 행렬. 


후배에게 삶이란 어쩌면 그 낙타의 걸음처럼 고단한 행진이었을 것이다. 뜨거운 열기 속 무거운 등짐을 지고 묵묵히 걷고 걸어 도착한 새 보금자리. 이제는 무거운 등짐을 부려놓고 지금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소중히 간직하며 잘 살렴. 유턴을 하는 후배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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