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08 호

詩의 풍경 <27> 노지의 힘

진 명 주(시인)

 

유독 저 정자나무 위 허공에는
옹이가 많다
그곳을
아무 일 없는 듯 지나칠 수 없는
새들이 나무에 내려앉아 숨을 돌리고
위로만 벋으려던 가지도
옹이에 닿아 구부러진다

언젠가 당신의 부드러움에 닿아
아름답게 휘었던 기억이
쓸쓸한 옹이로 만져지는 저녁이면
내 안의 저수지에 맑은 물이 불어나고
그런 날
골목은 조금 더 둥글게 휘어
그 끄트머리마다
과실이 열리듯
붉은 집들이 매달려 있다              
               전명숙 〈옹이〉 전문

 

 

TV 속 말똥구리가 제 몸 몇 배 크기의 커다란 말똥을 굴리고 간다. 비탈진 길을 오르려 무진 애를 쓰다 그만 굴리던 말똥에 깔려 버렸다. 버둥거리던 말똥구리가 기척이 없다. 그리고는 화면이 바뀌었다.


농장에 도착, 그녀를 보는 순간 난데없이 말똥구리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그 말똥구리는 일어났을까. 일어나 무사히 자기의 보금자리에 도착했을까?


오디를 따고 있는 그녀의 다리는 지난 번 보다 더 휘어졌다. 농장이 넓어지고 가계가 윤택해질수록 상대적으로 멀쩡하고 단단하던 그녀의 몸은 속도를 더해 굽어갔다. 키는 줄어들고 손가락 마디는 굵어졌다. 온갖 풍상을 겪은 나무의 몸에 옹이가 생기고, 그 옹이에 바람과 날 것들이 쉬어 갈 수 있는 쉼터가 만들어지듯, 어느 사이 그녀의 삶에 생긴 옹이가 커져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쉼터가 되고 있었다.


나는 손이 험한 사람을 보면 덮어놓고 믿는 버릇이 있다. 그와 나란히 하고 앉아 그가 들려주는 신산한 삶의 내력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을 좋아한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만이 마음 속 몇 개씩 옹이를 간직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 알았다.


굽히기 싫어 돌아서던 순간들, 문을 닫고 마음을 닫은 사연들. 그러다 어느 날 그 까짓것 하는 마음으로 돌아앉으니 마음에 터억, 옹이 하나가 들어차더라고. 하나 둘 늘리다보니 힘들기만 하던 삶이 만만해 지더라고. 그제서야 비로소 숨통이 트이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더라고.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그렇게 굽어가며 굽은 마음으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켜냈노라고 웃는다. 기척 없던 말똥구리가 다시 일어나 말똥을 굴리고 있었다.


환히 웃는 그녀의 입 주변이 오디 자국으로 거뭇거뭇하다. 그녀의 삶은 달콤한 오디처럼 입가에 남은 보기 흉한 오디 자국처럼 그렇게 어우러지며 완벽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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