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07 호

詩의 풍경 <26> 마음의 귀를 키우다


진명주(시인)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아, 오늘날처럼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神)이든
어른이든 애이든
아저씨든 아줌마든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모든 귀가 막혀 있어
우리의 행성은 캄캄하고
기가 막혀
죽어가고 있는 듯.
그게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제 이를 닦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그걸 경청할 때
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
한 고요 속에
세계는 행여나
한 송이 꽃 필 듯. 
              
정현종, 〈경청〉 전문

 

 

배탈이 났다. 전날 저녁 외식을 했는데 음식이 상했던 것일까? 딱히 이거다 짚어지는 것이 그것 외에는 달리 없다. 같이 먹은 이가 아무 이상 없기에 시간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는데 어라, 상태가 생각보다 심하다. 결국 병원신세를 지고서야 배탈은 멈추었다.


탈이 나는 것은 조심하라는 몸이 나에게 보내는 경고다. 마음에 짚이는 음식들을 멀리하는 것은 몸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내 마음의 신호다. 몸이 내게 보내는 이야기를 알아듣는 것은 내가 내 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내 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의 눈을 바라만 봐도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작정하고 앉아 냉장고를 정리한다. 냉장실 가득한 내용물들을 꺼내 정리를 한다. 마음이 개운하다. 문제는 냉동실이다. 한 겹 두 겹 유통기한 날짜를 감추고 있는 검은 봉지 속 덩어리들. 사람과 사람 사이 문제가 생기는 것도 서로의 마음을 저렇게 검은 봉지 속에 넣어 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의 말은 들으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고 오직 제 고집에 사로잡혀 꽁꽁 얼어있는 마음들이 탈을 일으키는 것이다.


봉투를 풀어 내용물을 확인한다. 먹을 것은 투명한 봉투로 옮겨 담고 유통기한이 지난 것은 버린다. 손 댄 김에 저녁 찬거리를 위해 얼어붙은 생선을 해동시킨다. 내가 나를 바라보듯 전자레인지 안에서 녹고 있는 생선을 본다. 얼어붙은 마음이 녹고 있다. 내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듯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이다. 바로 그 자리다.

OPEN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