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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주(시인)
내가 너에게 편지 부치러 갈 때 한가한 우체국 입구에 나와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인사하던 우체국장 아저씨 꼭 나의 비밀을 아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나는 뚱뚱한 우체국 아가씨가 볼까봐 얼른 편지를 부치고, 그리고 얼마나 후회했던가 내 뜨거운 편지가 지구를 삼천댓 바퀴 돌다 도착했으면 싶었다 사랑한다는 구절에 세월의 곰팡이가 슨 채 이쁘게 늙은 너의 손주 손에 배달되어 노인대학 야유회 간 너를 기다리든지, 아니면 먼지가 더께로 낀 너의 창문을 기웃거리다 수취인 불명이 찍혀 바람이 내 무덤 앞 넓적바위에 일몰 직전 햇살처럼 쓸쓸히 반송해주길 나는 정말 얼마나 꿈꾸었던가 셔터가 내려진 철산3동 우체국 어둠속에서 넋없이 바라보다 돌아선 날 내 방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오십억 광년쯤 떨어진 별에 들렀다 갈 편지를, 너에게 쓰기로 했다 황규관, 〈철산동 우체국〉 전문
연애편지를 많이 쓰면 시인이 된다고 하더니 아마도 그 덕인가. 한 때는 나도 참 많은 연애편지를 썼다. 연애 시절 사랑하는 사람이 서울로 발령이 났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기를 하나 전자메일이 있기를 하나. 서울과 부산의 아득한 거리를 메꾸는 것은 편지 밖에 없었다. 간간히 전화로 서로의 그리운 목소리를 확인하고는 애틋한 마음은 손편지로 대신해야했다. 매일매일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는 게 사랑에 빠진 나의 일이었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던지 짧게는 서 너 장, 길게는 A4 용지 빼곡하게 스물여덟장의 장문의 편지를 쓴 적도 있다. 내용은 절절한 그리움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렇게 1년 반 정도 장거리 연애편지는 다시 부산으로 발령을 받아 중단되었고, 우리를 묶어준 그 편지는 결혼 후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결혼 초에는 때때로 편지를 꺼내어 보며 지난 시간을 되새기기도 했었는데, 어느 순간 그 편지를 쓴 일도, 보관하고 있는 것도 잊고 살아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손편지를 쓰는 일이 사라졌다. 쉽게 마음을 주고받을 매체가 많은 세상, 굳이 편지로 마음을 대변할 이유도, 여유도 없어진 것이다. 손편지를 쓴 기억이 언제였던가. 수없이 쓰고 지우고 다시 쓰던 그 떨림을 느낀 적이 언제였던가. 편지가 사라지며 절절한 그리움도 같이 사라졌다. 그 흔하던 우체통도 쉽게 찾아 볼 수가 없다. 우표에 뜨끈한 침을 묻혀 붙인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며 편지가 가는 동안 느끼던 그 두근거림을 느낀 게 언제였던가. 마음을 전하는데 손편지 만큼 절절하고 애틋한 게 또 있을까. 잠 못 이루며 쓰고는 결국 보내지 못하던 첫사랑의 떨림처럼 그런 편지를 쓰고 싶었다. 연애 시절을 생각하며 출장을 가는 그에게 편지를 써서 살짝 넣어 주리라. 그러나 그것은 생각 뿐, 어찌어찌 시간만 보내다가 결국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허둥지둥 짧은 편지를 써서 가방 속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오래 반성했다. 에구, 정말 이렇게 변하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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