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03 호

詩의 풍경 <22> 사랑의 표정

                                                 진명주(시인)

 

 

쌀을 씻어 안치는데 어머니가 안 보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머니가 계실 것이다
나는, 김씨! 하고 부른다
사람들이 들으면 저런 싸가지 할 것이다
화장실에서 어머니가
어!
하신다
나는 빤히 알면서
뭐해?
하고 묻는다
어머니가
어, 그냥 앉아 있어 왜?
하신다
나는
그냥 불러봤어
하고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인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똥을 누려고
지금 변기 위에 앉아 계시는 어머니는
나이가 여든다섯이다
나는 어머니보다 마흔 한 살이 어리다
어려도
어머니와 아들 사인데 사십 년 정도는 친구 아닌가
밥이 끓는다
엄마, 오늘 남대문시장 갈까?
왜?
그냥
 
엄마가 임마 같다
              
임희구 〈김씨〉 전문

 

 

등골탑을 아시나요? 치솟는 등록금이 얼마나 버거운지, 자녀를 대학까지 졸업시키려면 부모의 등골이 휜다고 해서 나온 신조어입니다. 가계부채는 나날이 늘고, 힘들게 키운 자식이 자신의 기대치에 못 미쳐 부모는 속이 상하고, 자신을 믿어 주지 않는 부모로 인해 자식은 속이 상합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집, 옆집, 뒷집 이야기입니다. 우리동네 뒷동네 옆마을 이야기입니다. 집집마다 한숨이 늘어갑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소리가 늘어갑니다.
힘들다 힘들다 마음의 상처를 외치던 사람들은 이왕 이렇게 살 거, 하고 싶은 거나 하고 살자.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를 작성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이루고 나면 행복해질까요? 아홉을 가지면 하나를 채워 열 개를 가지고 싶은 게 인간의 욕심인데 말입니다. 힘든 세상살이, 그래서 가열차게 힐링의 바람이 불어 대는군요.
구석진 곳 눈덩이가 아직도 녹지 않고 있습니다. 단단해진 눈덩이는 매연과 오물로 뒤덮여 설레임은 사라지고 거리의 흉물로 자리합니다. 우리 마음 속 순수했던 마음들이 저리 뭉쳐져 추한 욕심으로 응달진 곳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내가 당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당신을 힘들게 했다면 용서하십시오. 사랑이라는 이름을 멀지 않은 곳에 놓겠습니다. 부르면 응, 하고 들을 거리에. 어딨어? 하고 물을 정도에. 그 대답이 들릴 정도, 마음의 지척에 놓겠습니다.

OPEN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