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202 호

詩의 풍경 <21> 한 해를 보내며


                                                                 진명주(시인)

 

 

 

폭풍한설에 풍경소리마저 얼어붙은 겨울 산사에서
온밤을 통째로 우는 건 문풍지뿐이다
문의 틈새로 살고 있으나
사실은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솜이불이 깔린 따뜻한 아랫목에 몸을 누이고
바람 타는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멈추고 울음을 그쳐도
문풍지는 문풍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차라리 바람에 온몸을 치떠는 것이,
몸부림치며 우는 것이, 살아있는 이승의 시간인 것을
안이어서도 안 되고 밖이어서도 안 되는
안과 밖의 경계를 살아야 하는 문풍지
 
               박두규 〈문풍지〉 전문

 

 

눈이 귀한 부산에 첫눈이 내렸다. 싸락눈으로 시작한 눈은 금방 엄지손톱 크기로 이내 밤송이만큼 세를 불려 짧은 시간 도시를 하얗게 덮었다.


몇해 전 폭설로 인한 교통대란의 악몽이 떠오르는 어른들과는 달리, 아파트 옆 내리막 공터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아이들이 포대자루로 만든 눈썰매를 타고 있었다. 눈이 귀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이 눈은 언제 볼지 모를 축복의 놀이가 된 것이다.


선거로 인해 나라 안은 어수선했고, 경기 침체로 꽁꽁 얼어붙은 마음은 더더욱 옷깃을 여미게 했다. 한파는 계속 되었고, 산동네 아이들이 놀았던 자리는 맨들맨들 빙판만이 남아 있었다.


올 들어 가장 춥다는 날, 구세군 자선냄비에 익명의 독지가가 1억원이 넘는 금액의 수표를 기부했다. 동봉한 편지에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이웃과 나눔의 시간을 보낸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작은 씨앗 하나를 세상에 띄워 보낸다고 적혀 있었다.


그 소식은 함박눈이 어지러운 세상을 하얗게 덮듯이, 꽁꽁 얼어붙은 이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덮어 주었다. 냉기를 뚫고 보드라운 싹 하나가 움트고 있었다.


가는 문풍지가 황소바람을 막아주듯이, 작은 온정들이 힘을 더해 어려운 이웃들의 추위를 나누고 있었다. 난방비가 부족해 제대로 불 지피지 못하는 산동네 독거노인들에게 연탄이 배달되었다. 무료급식소 앞에는 긴 줄이 이어졌다. 누군들 문 안에서 편한 삶을 택하고 싶지 않으랴. 힘이 들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고 했다.


급식소 앞을 지나며 누군가를 위해 뜨거운 국밥을 말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반성했다. 올 해가 다 가기 전 작은 힘이나마 다시 그 대열에 동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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