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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 이후 효자(孝子)와 충신(忠臣), 의사(義士)와 열녀(烈女)의 덕행을 숭상하여 국가에서 특별한 은전을 내려 왔다. 부산지역에도 시대마다 인륜 도덕의 실천에 충실하였던 인물을 포상한 정려에 대한 기록이 많지만, 실제로 남아 있는 정려의 흔적은 드문 편이다. 정려(旌閭)나 묘비문(墓碑文)은 성씨와 가문의 위세를 나타낼 뿐 아니라, 지역문화의 구심체가 되는 표상 인물의 행적을 드러내는 금석문으로서 소중한 가치를 가진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가치를 지닌 효자비가 사상구에 2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상역 뒤편 신라대학교로 올라가는 등산로 주변에 1610년에 세운 ‘효자 황택룡 정려비’가 있으며, 1715년에 세운 ‘효자 구주성 정려비’가 덕포동 상강선대 안에 있다. 황택룡(黃澤龍)과 구주성(具周星)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병들어 기절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여 소생케 하였는데, 그 소문이 관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에겐 마치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삼사백년 전 괘내리와 덕포리에서 있었던 실화로『동래부지』효자 효녀조에 그 기록이 나와 있다.
이밖에도 감동리 조경기, 서전리 황씨부인, 학장동 황씨부인, 감동리 최씨부인 등 효자와 열녀가 많았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사상 지역에 효자 효녀가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효행이 많았으며 형제자매간에 우애가 돈독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선대의 아름다운 효행정신이 알게 모르게 오늘의 우리에게 전해내려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요즘 같은 핵가족시대에 살면서 부모님을 직접 모시지 않는다고 해도, 자주 전화 연락하여 소식을 알려주고, 종종 찾아뵙고 거칠어진 부모님의 손을 꼭 잡아주며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현대의 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강 은 수
(명예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