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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주(시인)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잘나고 큰 나무는 제 치레하느라 오히려 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 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우쭐대며 웃자란 나무는 이웃 나무가 자라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햇빛과 바람을 독차지해서 동무 나무가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 훼방한다는 것을 그래서 뽑거나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이 사는 일이 어찌 꼭 이와 같을까만 신경림 〈나무 1 - 지리산에서〉 부분

식구가 늘었다. 잎이 작은 아이들이다. 화훼단지 갈 적마다 구석진 곳에서 몸이 휘어진 채 서 있던 키가 굽은 마삭줄도 있다. 오래 바라본 뒤라 두 말 없이 손잡고 왔다. 거실 한 쪽 신문지를 깔고 분갈이를 한다. 허름한 포트에 있던 아이들. 분만 바꾸었을 뿐인데 딴 인물이다. 물을 주고 기존에 있던 아이들에게 텃세 부리지 말고 잘 지내라고 사이사이 자리를 잡아준다. 며칠 지나자 반질하니 윤기가 돈다. 창가에 앉은 아이들은 까닥까닥 몸을 흔든다. 어느 사이 이곳이 저들 마음에 든 것일까?
화초를 기르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게 된다. 수많은 시행착오 뒤에 알았다. 햇살 좋아하는 아이, 그늘 좋아하는 아이, 물을 좋아하는 아이, 물을 멀리하는 아이. 키가 작은 아이들을 항아리나 벽돌 위에 올려 키를 높여준다. 그늘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분과 분 사이에 몸을 숨겨준다. 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흠뻑 물을 준다. 묵묵히 앉아 있는 곁의 아이가 맘에 걸린다. 야박스러운 거 같아 짤끔, 물을 준다. 영락없이 몸이 상한다. 때로는 무관심이 관계를 오래 갈 수 있게 한다.
화초를 기르며 배운다. 홀로 우뚝하다고 자만할 것도, 작고 초라하다고 기죽을 일 없다. 서두른다고 꽃 피지 않는다. 마음의 여유가 관건이다. 내 방식이 최고다 우기던 고집을 한 뼘 내린다. 빨간 벽돌 위에서 키 큰 ‘즈이나’의 말을 경청하는 ‘다육이’처럼 하고 싶은 말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한다.
2년 전 한겨울. 이사할 곳을 찾다가 베란다 너머 멀리 유치원 앞 앙상한 빈 나무를 보았다. 이사한 이유가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 손 뼘만큼 보이는 낙동강과 저 나무 때문이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모두 하하 웃는다. 누구에게는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새로운 삶의 나침판이 되기도 한다. 그 나무가 지금은 가지마다 푸른 잎이 울창한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보는 것도 생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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