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195 호

詩의 풍경 <14> 골목 이야기

 

 

 

 

 

진명주(시인)

 

            좋은 사이들이 말을 할 때 가만히 눈매를 바라보는 것처럼
            손끝으로 입을 가리는 것처럼
            겨드랑이를 쿡 찌르고 깔깔대는 것처럼
            우리 동네 집들이 말을 한다
            파란 대문 집은 아직 아버지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아서
            외등을 켜고
            군불 때는 집은 쇠죽 끓이는 소리로 오래된 말을 한다
            〈줄임〉
            오랫동안 살을 맞댄 이웃집들은 오래된 부부처럼 닮아간다
            된장 맛이 같아지고 김치 맛이 같아지다가
            우리 담장 허물까 한다
            그러다가 한방 쓸까 한다
            돌아설 수밖에 없는 어려운 처지에서는 등으로 말을 한다
            뒤란으로 말을 한다 거기 목련 한 그루 심어둔다
                       --------박형권, 〈우리 동네 집들〉 부분                  

 


일없이 동네를, 동네골목을 돌아다닌다. 이리저리 얽힌 골목은 그날그날 다른 얼굴 다른 모습을 보인다. 때로는 생각지도 않은 이야기를 덤으로 들려 주기도 한다.
마당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낮은 담장 안, 널어놓은 빨래들이 깃발처럼 휘날린다. 같이 오래 살면 닮는다더니 고만고만 닮은 집들. 오종종 내놓은 화분도, 키를 세운 줄장미며 우직한 모습의 무화과나무도 키가 비슷하다.
신기해라. 언제부터 있었을까. 눈여겨보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낡은 우물. 두꺼운 나무 뚜껑은 오랜 시간동안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한 때는 깊은 우물물을 길어 올려 지아비의 술국을 끓이고, 아이들은 말갛게 낯을 씻었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마을의 추억을 간직한 채 시간을 견디고 있다. 둘러 처진 담장만이 은밀하게 우물을 보듬는다.
골목을 돌자 우람한 덩치의 키가 큰 팽나무. 골목을 가득 채운다. 이웃한 집들을 피해 제 가지를 구부린다. 허리춤엔 약병이 몇 개 꽂혀 있다. 나무둥치를 타고 날 것들이 줄지어 오르내린다. 꼭꼭 숨으라고 머리카락 보인다고, 제 몸을 최대한으로 늘리고 있다.
팽나무의 품 안에서 나고 자란 날 것들이 하나 둘 나무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시간, 마음 속에 저마다 깊은 우물 하나 간직한 사람들 하나 둘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다. 외등 하나가 어둔 골목을 지켜주듯, 제 마음의 가지를 구부리며 서로에게 곁을 주는 사람들. 내일은 보다 환한 날이 될게라고 서로 다독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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