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194 호

詩의 풍경 <13> 꽃 그늘

 

                 〈사진 : 안소휘〉

 

진명주(시인)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중략....)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정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 부분

 

 

마트 앞, 누군가 내 앞을 가로 막는다. 현지다. 다짜고짜 내 손에 들린 시장봉지를 뺏어들고는, 아줌마 꽃 보러 가요. 팔짱을 낀다. 현지의 손길에 이끌려 길 아래 초등학교로 향한다. 학교는 벚꽃이 에워싸 안이 보이지 않는다. 인사성 밝고 살가운 현지는 지금 ‘이태백’이다. 오늘도 어딘가에 서류를 넣고 오는 중일게다. 현지랑 팔짱을 끼고 벚꽃 아래를 걷는다.
며칠 전 꽃을 시샘하는 비가 내렸다. 빗물에 후두둑,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아까워라, 아까워라 내리는 비를 원망했다. 절정기를 지난 벚꽃은 남은 시간을 만끽하려는 듯 더욱 더 환하게 빛난다. 드문드문 꽃 진 자리 푸르스름 잎사귀가 돋았다.
우리 앞으로 자전거가 지나간다. 어린 누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느라 열두어살 됨직한 오래비는 진땀이다. 넘어지면 다시 시작하고, 넘어지면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실갱이를 한다. 쿵! 소리가 들린다. 오누이 둘이 자전거를 사이로 앉아 있다. 부리부리한 눈을 굴리며 오래비는 목청을 높인다.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돌리라는 데 왜 말을 듣지 않느냐, 제법 으름짱이다. 으름짱을 놓으면서도 손은 누이의 무릎에 가 있다. 무릎이 까진 누이는 제 서러움에 목을 놓고 운다.
아줌마, 나도 사랑 받고, 보호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왠지 이 세상이, 이 사회가 자꾸 나를 거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내게도  저렇게 달려와 걱정하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말하고는 무안한지 까르르 웃는다. 그 웃음이 빗물에 떨어지던 벚꽃을 닮았다. 미안하다. 우리가, 이 사회가 너희에게 빚을 지고 있구나. 깍지 낀 손에 힘을 준다. 내 사랑이 현지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자전거벨 소리가 말갛게 들린다. 어느 사이 오래비는 뒷짐을 지며 따라오고 누이의 맑은 웃음소리가 벨소리를 앞세우며 우리 앞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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