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194 호

칭찬의 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듯,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칭찬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가족들에게조차 서로 간에 칭찬을 하는데 인색하다.
며칠 전, 우리 형제들이 부모님 생신을 맞아 다 모였다. 음식을 먹던 중 바로 아래 남동생이 먼저 이맛살을 찡그리며 “엄마, 찌개 맛이 왜 이래요” 라고 불평했다. 그때 아버지가 버럭 화를 내셨다.
“에헴! 엄마가 온종일 정성스레 준비해서 식사 준비를 했건만 일곱 살배기 어린애처럼 반찬 타박이고? 맛있기만 한데… 나 밥 한 그릇 더 묵자….”
순식간에 식탁 분위기는 어머니 아버지 쪽으로 확 쏠리며 아버지의 한마디에 우리 3남매는 요즘 말로 ‘깨갱’이었다.
아버지는 진지를 다 드신 후 밥맛이 좋다는 칭찬까지 아끼지 않으셨다. 나중에야 우리는 아버님의 말뜻과 화를 내신 이유를 알았다. 거기서 만약 아버지까지 반찬 문제를 거론하셨다면 어머니는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을까. 우리는 그날 아버지로부터 큰 것을 배웠다. 칭찬, 그거 어려운 거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칭찬에 인색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이런 일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먹고 잘 곳도 없는 한 청년이 파리 교외의 한 의상실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이 청년은 이탈리아 베니스 출신인데 가족 모두 프랑스로 이주한 뒤,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끼니를 잇기에도 빠듯한 수입이었기에, 옷 한 벌 살 여유조차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청년은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다행히도 재단하는 것을 좋아하고 제법 솜씨도 있었다.
그날도 비를 피하며 의상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마침 문을 나서던 한 부인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머, 그 옷 참 근사하네요. 어디서 맞췄어요?”
“네? 그게 아니라 제가 직접 만든 건데요.”
“정말 멋지군요. 당신은 훌륭한 옷을 만드는 솜씨가 있네요.”
이름 모를 부인이 던진 칭찬에 그 청년은 눈이 번쩍 뜨였다.
1950년, 마침내 청년은 그 칭찬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변두리에 의상실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그해에 영화 ‘미녀와 야수’의 의상을 담당한 것을 시작으로 1974년 〈타임〉 표지를 장식하며 ‘유럽에서 성공한 금세기 최고의 디자이너’라는 찬사까지 듣게 되었다.
그가 바로 세계적인 의류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이었다.

내가 던진 칭찬 한마디, 정말 가족에게든 혹은 남에 대해서든 칭찬에 인색하지 말자.

 

나 재 필
(괘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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