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193 호

詩의 풍경 <12> 생이 곧 길이어서

 

<사진 : 안소휘>

 

 

진명주(시인)

 

 

 

   풀들은 어떻게 시멘트를 삭이는가, 사귀는가.
   이 도시의 4차선 도로변을 따라 높게 둘러쳐진 옹벽엔
오래전부터 깊은 금이 구불구불 길게 가 있다.
   이 거대한 위압 아래가 한동안 고요한 때가 봄이다.
   금 간 데를 디디며 풀들이 줄지어 돋아나 자란 것인데
   산야의 풀들에 비해 물론 몹시 지저분하고 왜소하지만
명아주 바랭이 참비름 강아지풀 같은 제 이름, 초록 정강이의
제 중심을 잘 잡고 있다.
   생이 곧 길이어서 달리 전할 말이 없는 풀들
   흙먼지며 매연, 저 숱한 차량들의 소음까지도
   꽉꽉 다져넣어 밟으며 빨며 더듬더듬 더듬어 풀들은 또 
풀들에게로 넘어가고 있다.
   천산북로, 누더기의 몸들이 닦고 있다.
                                  ――― 문인수 〈벽의 풀〉 전문


겨우내 모래로 덮여 있던 산복로. 푸른 기운이 돈다.

차량이 뜸한 곳은 풀의 키가 한 뼘이다. 커피며 어묵을 파는 저 가게는 오늘 한가하다. 가게 앞, 주인장은 고개를 늘어뜨리고 앉아 무엇을 보는지 골똘하다. 발아래 개미들이 제 몸보다 큰 먹이를 끙끙거리며 지고 간다. 그가 끙끙거리며 지고 온 짐을 슬그머니 부리고 주저앉아 터를 잡은 지도 오래 전. 집이며 동시 일터인 낡은 가게 앞, 풀들이 키를 세운다. 개미의 행렬은 금이 진 틈을 비집고 일어선 그 풀더미 쪽으로 이어진다. 그는 마른 식빵 부스러기를 마저 놓고 손을 탁탁 털고 일어선다.
가방을 맨 염씨가 손을 흔들며 들어선다. 염씨는 그의 이웃이자 오래된 고객이다. 아픈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가게를 접으려고 벽보를 붙이고 오는 중이다. 재고 총정리, 90% 할인. 너덜거리는 벽보처럼 그의 남루한 생이 한때 바람에 너덜거린다. 가늘고 여린 저 풀들처럼 우리 생의 금간 데를 디디며 일어서는 힘이 우리에게 있을까.
바람이 슬며시 염씨의 늘어진 머리카락 몇 올을 올려준다. 그리고는 이내 휙하니 오던 쪽으로 다시 달아난다. 그 뒤를 작은 개 한 마리가 따라 뛴다. 학원 버스에서 노란 가방을 든 아이들이 줄지어 내린다. 그들이 깡총 뛰어 내리는 보도블록 틈 사이에도 여린 풀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어린 것의 손을 잡고 염씨가 사라진 자리, 주인장은 어묵의 꼬챙이를 하나하나 정리한다.
생이 곧 길인 험한 여정에 놓인 모든 존재. 나비도 새도, 귀하거나 천한 것들이 모두 저 풀처럼 이 봄날에, 제 생의 금간 틈을 비집고 일어서 가볍게 흔들렸으면 좋겠어. 나는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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